자공공 아카데미 2기 취지문

타이틀03

 

 

자공공 (자조自助, 공조共助, 공조公助) 아카데미는 ‘세상을 구하고 싶은’ 이들이 모여 그간 우리가 살아온 ‘근대’ 문명을 성찰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토론을 벌이는 자리입니다. 첫 번째 아카데미에서는 ‘공간과 사회 큐레이팅’의 주제로 ‘창의적 공공 영역’을 만들어낸 장인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번째 학기는 ‘지속가능성’을 화두로 함께 공부하는 자리로 마련했습니다.

 

지구상에서 근대 시민들이 ‘(천부)인권’ 개념을 바탕으로 종교적 질서인 중세를 깨뜨린 지 4, 5백년이 지났습니다. 만인의 평등과 풍요를 추구해온 근대는 ‘효율’과 ‘분배의 정의’의 개념 아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었지요. 그런데 이제 그 시대 가치와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그 질서는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 개념이 부상하는 것은 바로 이런 붕괴의 와중에서입니다. 최근까지 지속가능성은 주로 경제와 생태 차원에서 다루어져 왔습니다. 과학기술과 소비주의적인 근대적 생활양식이 삶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기 상황이 장기 지속화 하면서 우리는 제도만이 아니라 일상적 삶의 연속성과 지속성을 위해 만들어진 근대적 장치 모두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근대 국가는 정치체로서 지속될 수 있을까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인터넷은?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은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요? ‘나’라는 근대의 주체 기획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사회는 지속성을 잃어가고 사람의 삶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것이 되고 있습니다. 자원이 소진되는 것을 넘어 지구 자체, 개개인 자체가 소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부의 분배가 아니라 ‘위험의 분배’가 문제가 되는 상황을 맞은 것이지요.

 

이 문명의 몰락은 한편으로는 하인리히 법칙이 예고한 핵발전소의 재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적 개인화와 단속사회/무연사회라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인권과 정의라는 단어를 넘어 공생과 책임의 윤리가 대두되는 것은 바로 이런 와중에서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위기의 심각성은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보려는 사람들, 스스로 돕고 서로를 살려서 새로운 공공을 만들려는 이들이 모이는 자리가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는 데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시대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모이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더욱 잘못되어간다는 느낌에 서로를 기피하는 분위기마저 생겨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에 갇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저들’의 이분법과 냉전의 망령이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유, 배타, 객관성, 목표 달성과 효율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변화를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유와 관여, 포용과 공생, 소통과 합의, 과정과 간주관성, 그리고 느림과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특히 시대 언어를 만들고 싶어하는 인문학도와 도구를 가진 공학도들 사이에 거리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힘겨운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시대파악을 하려는 지식인들은 현장감을 잃고 ‘과잉언어화/과잉 도덕화’ 되어가는 반면 정치, 정책, 행정, 경제, 금융, 미디어나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 실무자들은 도구는 갖고 있지만 일에 매몰되어서 몰가치적 성향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이번 자공공 아카데미는 지속가능성을 생태와 경제를 넘어 개인의 지속성, 관계의 지속성, 가족의 지속성, 국가의 지속성 등 삶의 위기에 대한 전면적인 언어로 확장해보려고 합니다. ‘공생’과 ‘책임’이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런 와중에서 일 것입니다. 경계를 넘어 이론과 실행, 소통합리성과 도구적 합리성 차원의 연결을 해내는 언어와 방법을 찾아가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론과 실천의 만남을 모색하며, 현장을 연결하고, 통섭을 꾀하려는 것이지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자신과 일상을 공유하는 이들을 사랑하면서 함께 일들을 도모하는 것, 그 작은 실천 속에서 global/ national/ local이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 힘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함께 하는 것이 힘”이지요. 그래서 강의를 들은 후에 비슷한 관심을 가진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토론을 한 후 다시 모여 토론의 깊이를 더해가는 학습 방식을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구태여 영등포의 하자 센터까지 오지 않더라도 먼 곳에서도 강의를 실시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동네에 모여 즐겁게 토론하면서 시대를 구할 일을 함께 할 소중한 파트너들과 더욱 우정을 돈독하게 쌓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래 안데스 지역 우화에 등장하는 벌새처럼 소박한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해볼까요?

 

“숲이 타고 있었습니다.
숲속 동물들은 앞을 다투며 도망을 갔습니다.
하지만 벌새는 조그만 주둥이로 물고 온 물방울로
산불을 끄느라 분주했습니다.
도망가던 큰 짐승들이 그 모습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저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 벌새는 대답했습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

 

 

2013년 2월 28일
2기 담임 조한혜정(하자센터장) 엄기호(덕성여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