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3강 희박한 역사 그리고 흔적의 귀환, 신여성

[리뷰] 3강 희박한 역사 그리고 흔적의 귀환, 신여성

 

자공공 아카데미 세 번째 강의의 제목은 ‘국민과 시민 사이 : 가장 오래된 전선, 가부장제’였다. 발제자 김수진선생님께서는 역사란 넓게 펼쳐져 있던 시간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해서 꽉 채워놓은 것인데, 여성은 이 안에 희박하게 존재한다고 말씀하셨다. 희박하지만 곳곳에 흔적이 있다. 희박한 흔적은 적합한 조건과 환경이 되었을 때 출현하는데, 신여성이 바로 그것이다.

 

 

치마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여자

 

대표적인 신여성으로 소개된 영국의 페미니스트 소설가 사라 그란트의 사진을 보면 그 당시 영국 신여성의 분위기를 단번에 알 수 있다. 고딕한 검은 드레스를 입고 무거운 모자를 쓴 채 자전거를 잡고 서 있는 사진이다. 지금과는 달리 여성이 자전거를 탄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던 시절, 신여성들은 자전거를 타기 위해 치마바지까지 입기 시작했다. 파격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경우 단발머리가 신여성의 상징이었는데, 그 때문에 ‘모단양’이라는 명칭도 있다. 신여성 열풍은 대한민국에도 불었다. 노라노와 윤심덕 등이 대표적이다. 초기의 신여성은 대체로 소설가 혹은 화가 등 예술가가 많았다.

 

 

신여성을 넘어 신시민으로

 

신여성이 어떤 존재였는지 이야기하는 강의를 듣고 나서 신여성이라는 단어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다. ‘새로운 여성’이라는 개념적 의미로만 생각한다면 신여성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출현한다. 그렇다면 지금도 신여성이 존재할까?

대한민국의 경우 나라가 실패하고 남자가 짜부러져있던 상태의 나라를 근대화시키고 싶다는 담론이 일어날 때 출현한 것이 신여성이다. 해방적 파국이라 이야기 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신여성이라는 개념이 다시금 등장할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비폭력적 운동을 해 온 여성을 보며 그들이 부딪히지 않을 수 있는 그 구역이 어디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또한 현대에서 여성이 파고들 수 있는 분야는 어디에 있을지 궁금하다.

한편 ‘신여성’이라는 표현 자체가 차별적이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제는 신여성이 아니라 신남성이 등장했을 수도 있고, 나아가 ‘신시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건 어떨까 한다. 개성이 차고 넘치는 사회에서 새로운 양상의 사람들을 묶기보다는,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키고 찾아가는 시민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민으로서의 이상적인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집단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새로이 출현했던 신여성. 지금 대한민국 사회 역시 가부장적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세월호의 승객들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선내에 계속해서 방송된 한 마디, ‘가만히 있으라’ 때문이었다. 이 한마디 안에서 우리는 가부장적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사회에게, 시민에게 하는 말 같이 들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는 신시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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