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 8강 국가난민에서 지구 난민으로 : 메솟에서 밀양까지

자공공 아카데미 8강 국가난민에서 지구난민으로 : 메솟에서 밀양까지

 

발제 : 이상국 (연세대 문화인류학)

<Film : Narek Hakhnazaryan – Sollima, Lamentatio (연주)>

<발제>

반갑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를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쁘다. 오늘은 흘러들어오고 흘러나가는 문제, 이주의 문제가 되겠다. 국가를 둘러싸고 어떤 방향으로 흘러들어오고 나가는지를 중심으로 얘기하겠다. 마지막에는 ‘우리는 국가 없이 살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여러분에게 던지며 마무리하고 싶다.

(사진 : 시골 마을)

어렸을 적 얘기를 하고 싶다. 한 통신회사의 광고를 본 적 있는가. KT라고. 올레! 하는 말이 등장한다. 무슨 뜻일까, 좋다는 뜻일 것이다. 근데 나는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여행을 하는 듯 했다. 7, 8살 기억이 시작될 무렵, 당시 나의 마을엔 부랑아들이 있었다. 70년대 말 80년대 초. 통칭 동냥아들이 있었다. 근데 이들이 지나가면서 “올레!”하면서 지나갔다. 그게 재미있어서 따라하면서 그들을 놀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70년대 말 80년대 초는 그런 부랑자들이 흘러들어오고, 사진을 보면 앞에 섬진강이 흐른다. 그때에는 사공도 함께 흘렀다. 강에 줄을 놓고 건넜는데, 그때는 신작로가 없어서 강을 건너 버스를 타곤 했다. 마을에 흘러들어오는 사공들에게 마을 사람들이 쌀과 살 곳을 주면서 머물게 했었다. 그러다 사공이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배가 떠밀려 아래쪽까지 떠내려간 적도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배를 다시 끌고오기도 했다. 사공이 없어지면 수소문해서 새로운 사공을 불러오든지 했다. 그렇게 흘렀다. 한편 우리 마을 내부에서도 많이 서울로 흘러나가기도 했다. 나도 흘러나갔다. 읍내로 나갔다. 내 마을에는 중학교가 없어서 그리로 흘러갔다. 읍내에선 촌놈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소위 3세계 이주민이 겪는 경험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놀림의 이유 중 하나는 강이었다. 비가 많이 오면 강이 넘치기도 했다. 그 때면 마을 이장이 전화로 괴산리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 요청이 학생들에게 퍼지면 다들 놀렸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 자발적 이주로 결국 한국의 중심에 들어섰다. 이유는 사람마다 달랐지만 종착지는 같았다. 서울은 블랙홀같은 곳이었고 그곳에는 기회가 많았던 것이다. 나와 내 마을 사람들이 겪었던 이주유형은 나만의 일이 아니고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있었던 것이라 본다. 90년대 중반 이후 나는 밖으로 흘러간다. 동남아로 갔다. 계기는 당시 한 단체에서 동남아 외국인자원 해외봉사를 했었다. 그때 동남아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동시에 본격적으로 공부할 생각이 들어 대학원에 들어갔다. 동남아 사람들이 서울로 온 시기와 내가 서울에 진입한 시기가 겹쳤다. 소위 내부이주와 해외이주의 역정이 정확히 90년대 중반에 겹친 것이다. 그것도 국가의 핵심인 서울에서 그들과 나의 생애가 마주쳤다. 나는 90년대 중반이 한국의 이주사에서 터닝포인트라고 본다. 처음으로 외국인 training system도 들어섰고, 미얀마 정치망명가들도 산업연수생이라는 신분으로 들어오게 된다. 90년대 중반은 한국정부가 난민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91년에 유엔에 강비을 하고 92년에 유엔난민기구 협약과 의정서에 가입을 하게 되고 따라서 국내법도 93년도에 개정하게 된다. 93년엔 난민조항은, 94년엔 난민집 신청을 받게 된다. 90년대 중반은 따라서 중요한 이주에서 터닝포인트였고, 그 때 내가 외국인을 만난 것이다. 90년대 중반은 나의 연구인 카렌족 난민의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90년대 그들의 최후 보루가 결국 미얀마 정부에 넘어가게 된다. 그들은 중국에 대규모로 난민이 되어 태국에 넘어온다. 나는 99년도 메솟에 가서 난민들을 처음 만난다. 내가 했던 이주의 패턴과 그들의 패턴은 달랐다. 나는 국가의 중심부터 갔다면 그들은 중심부에서 조각처럼 튕겨 나와 변방에 거주한 사람들이다. 나는 국가 내부로 들어가려 하는데 그들은 벗어나려 했다. 난민들은 국가가 지켜주지 않는 자들이었다. 누가 지켜주느냐? 나는 거기서 또다른 거버넌스의 형태를 봤다. 그리고 그것이 일상적으로, 실제로 이뤄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국가가 지켜주지 않아도 그들에겐 국가와 같은 유엔난민기구가 있었다. 먹을 것, 잠잘 곳, 의료까지 소위 초국가 난민 NGO가 제공했다. 이런 보호 속에 난민공동체가 유지되었고 강화되었다. 난민촌이라는 구획된 곳에서 공동체의식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 지도자들이 민족주의를 강화시키는 행위도 이뤄지고 있다는 걸 보았다. 그들은 문지방에서 살아가는 삶. liminality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끼인 공간에서도 그들의 일상적 삶이 계속되었다. 나는 이 삶이 적어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당시 이들의 삶이 튼튼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국가가 그들에게 굳이 필요없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아나키즘을 실천한 셈이다. 국가 없이도 살아가는 삶이 난민촌에서 가능했던 것. 정거장에서 살고있는 삶. 나는 그곳에 같이 살면서 이런 삶이 끝까지 진행되는 것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면서 이 정거장이 해체된다. 난민들이 아나키즘에 기대어 비국가성을 실현하는 삶 속에 이들이 오래 있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 그들은 국가 아래 살아가는 삶을 바랐던 것이다. 이들이 결국 가고자 했던 곳은 ‘좋은 국가’였다. 자기 국가에서 튕겨져 나왔지만 그들은 좋은 국가로 가서 새로운 삶은 개척하려 했다. 소위 재정착resettlement프로그램이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난민들은 이 프로그램에 어떻게든 수혜를 받아 선진국으로 가고 싶어했고, 난민공동체가 급격히 깨졌다.

(사진: 난민촌 / 난민들과 이상국)

내가 갔던 난민촌이다. 1999년도에 만났던 사람들이다. 16년 전이다. 이 중 2명과 3년 전에 또 만났다. 이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난민이었던 이들이. 추적해보니 난민촌에 거주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캐나다, 유럽으로 떠났다. 그 중 2명과 국경지역에서 만났는데 이들은 태국 시민이 되었다. 여전히 난민으로서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어떤 국가의 시민으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국가를 찾는 삶이 2000년도 중반부터 시작됐는데, 벌써 12,13만명의 난민 중 6,7만명의 난민이 외국에 정착되었다. 일본이 2007년부터 메솟 주변의 카렌족 난민들을 수십 명씩 들여오고 있다. 해마다 열 명 정도의 숫자가 들어온다. 우리 정부도 재정착 프로그램 실시를 준비중이다. 대상을 선정하는데 카렌족 난민을 들어오려 하는 듯하다. 일본을 따라 편하게 시행하자는 뜻인 것 같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주의 패턴을 다시 생각해본다. 저개발국 사람들은 특히 난민들은 어떻게든 발전된 나라, 소위 선진국, 기회가 많은 나라로 오려 한다. 내가 난민촌에서 본 것, 국가 없이 사는 사람들의 가능성을 그들이 스스로 포기한다. NGO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국가를 벗어나 살던 삶을 살아가라’고 요구한다. 나도 그런 걸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영원히 살고싶어하지 않고 문지방을 건너려 한다. 문지방에서의 삶은 위태롭기 마련이다. 결국 편안한 국가의 시민의 되려고 한다. 그것도 좋은 국가의 시민이 되려고 한다. 한편 또다른 흐름을 본다. 선진국, 잘나가는 국가에서 떨어져 나가는 흐름을. 일본, 한국에서 국가없이 살아가려는. 우리 학과가 주도한 global action research라는 프로그램을 보니 일본 후쿠오카를 갔다. 거기서 국가로부터 벗어나 살려는 사람들이 나름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모습을 봤다. 결국 일본의 원전이나 한국의 세월호같은 충격적 사건이 국가를 극도로 불신하게 만드는 것 가타. 국가가 더 이상 나를 책임질 수 없다. 그래서 내 운명은 내가 책임지겠다. 이런 생각으로 국가를 멀리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듯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저개발국 난민들은 자기 국가를 떠나려 하지만 좋은 국가의 우산 아래 들어가려 한다. 그리고 방금 한 얘기, 좋은 국가 사람들은 좋은 국가로부터 나가려 하는 현상. 한 쪽에선 좋은 국가로 들어오려 하고 한 쪽에선 나가려고 한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동시에 발생하는 상반된 흐름을 우리는 어떤 이론적 견지에서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계급적 차원에서 설명을 할 수도 있다. 낮은 계급의 사람들은, 그리고 덜 가진 사람들은,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국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소위 잘 사는 사람들, 재벌들은 국가가 거추장스럽다. 이런 계급적 차원에서 좋은 국가 사람들이 좋은 국가로부터 벗어나려는 흐름을 설명할 수도 있다. 이념적 차원에서도 가능하다. 사회주의, 공동체주의, 사회민주주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국가없이 살아가려는 삶을 실현시켜보려고 할 수 도 있겠다. 그런데 내가 혼란스러운 것은, 우리는 국가를 불신하면서도 여전히 국가가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것이다. 복지 논의를 보면 그렇다. 국가가 이주민이나 난민들에게도 잘 해주기를 기대한다.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가 활개치고 있다. 그것은 자유의 증대 아니곘는다. 국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신’이 들어갔지만 자유와 시장이 핵심이다. 간섭하지 말라는 얘기 아닌가. 신자유주의의 핵심을 결국 좋은 국가에서 튕겨나간 사람들의 이유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귀촌 귀농 운동가들, 국가 없이 살아가려는 사람들 역시 ‘간섭하지 마라’. 교모히 신자유주의와 한국과 일본에서 보게 되는 귀촌 귀농 운동과 통하는 면이 있는 듯하다. 자유주의는 개인을 강조하고 귀촌 귀농 운동 공동체 운동은 개인을 떠나 사회, 공동체를 긍정한다는 게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국가의 간섭을 배제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국가가 우리에게 간섭하지 말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더 요구해야 하나? 간섭하지 말라달라 해야 하나, 더 챙겨달라 해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혼란에 빠져 있는 듯하다. 세월호 이후 우리가 국가에게 던지는, ‘우리 인생은 우리가 스스로 책임지겠다’와 같은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 ‘국가는 우리는 완전히 보호하라’와 같은 두 주장이 있는 듯하다. 당분간 국가는 없어질 것 같지 않다. 국가가 폭력과 법률과 복지 수단 등 모든 자원을 독점하는 현 상황이 당분간, 변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던질 현실적인 질문은, 내가 생각하기에 ‘어떻게 국가로부터 벗어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좋은 국가, 착한 국가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인 것 같다. 이 질문은 다음 질문과 연관된다. ‘과연 착한 것은 무엇인가? 국가가 착해질 수 있는가?’ 착하다는 건 개인적으로 이타적이다, 마음이 넓다 등과 같은 사람을 착하다고 한다. 그럼 그 뜻을 국가에도 적용시키자. 착한 국가는 어떤 국가일까? 존중, 배려해주는 국가. 누구를 배려해줘야 할까? 소수자? 근데 개인이 착하지 않는데 개인이 착할 수 있을까? 다른 질문. 국가는 착한데 시민은 악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착한데 교회는 악하다. 국가가 착하다. 이 문제는 파생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국가가 베풀 수 있는가. 국가가 베푼다 할지언정 시민이 베풀 수 있는가? 모든 시민이 착한 시민이 되었을 때 국가는 자동으로 착해지는가? 시민이 이주민과 이권을 두고 다툴 때 착해질 수 있는가? 국가는 이 타툼을 착하게 조정할 수 있는가? 착한 국가, 과연 현실에서 가능할 것인가? 결국은 굉장히 어둡다. 제사람을 챙기는 것이 국가의 속성이다보니 ‘착한 국가’를 만들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인 듯 보인다. 그런데도 착한 국가를 조금 좁게 정의해보면 복지 국가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착한 국가를 만든다는 것은 전복적인 복지 국가를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아까 흘러들어온 얘기를 했다. 현재의 복지담론에서 이주 문제는 빠진 듯하다. 내국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이 양육이나 노인 문제가 현재의 복지에서 핵심 사안이다. 이주민의 복지, 난민의 복지는 좀 다른 차원에서 다뤄진다. 착한 국가의 복지는 낯선 사람까지 챙겨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착한 국가는 낯선 이주민이 왔을 때 좀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사회. 법률 제도 시민의 태도가 갖춰진 사회가 아닐까 한다. 착한 국가는 사람들의 흐름을 막지 않는 국가이다. 흘러온 물이 곳곳에 잘 흘러가게끔. 이주민들이 흘러왔을 때 잘 곳곳에 흘러가서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해줄 수 있는 국가가 정말 착한 국가가 아닌가 싶다. 섬진강은 하류로 흘러갈수록 맑아진다고 한다. 보통 강은 상류가 맑고 하류가 오염되는데 섬진강은 반대다. 왜? 섬진강을 따라 지리산맥이 펼쳐져 있다.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섬진강에 유입이 되면서 하류로 갈수록 맑아진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도 이주민의 흐름을 계속 받아들이면 더 맑아지는 사회, 건강한 사회가 된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질문은 현시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국가로부터 떨어진 삶을 기획하는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착한 국가 좋은 국가, 이주민이나 난민이 우리 사회로 흘러들어왔을 때 그 흐름을 막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이주민을 우리 사회 내로 받아들이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순환이 잘 되는 착한 사회. 잠시 흘러들어올 지라도 환영받고, 흘러나가더라도 혼란하지 않고 다른 물이 들어와 건강해지는 사회. 나는 그런 사회를 바란다. 강의를 마치겠다.

8강조별토론_01

 

 

 

 

 

<종합토론> (패널 : 김현미(김), 이상국(이), 조한혜정(조한)

 

8강토론김현미

 

 

 

 

 

 

 

 

 

 

 

김 : 이상국 선생님의 지평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는가. 신자유주의 체제가 1990년대 가속화된 이후 이것은 세계의 질서를 좌우할 뿐만 아니라 이주정책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전에는 이주자 그리고 난민을 환대하는 것을 민주화, 인권의 지표로 삼았다. 그래서 난민에 대해 좋은 정책을 갖는 영국 등의 인권중심적 정책을 선전했는데, 90년대 이후이주자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OECD가입국부터, 우리 국가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 이주자들은 심사하고 적당한 규모로만 받아들이고 돌려보낸다는 정책을 취하면서 이에 직격탄을 맞은게 난민이다. 난민은 박해가 중요하다. 본국에서 종족 종교 정치적 입장 성적 박해를 받아서 자기 나라에 살 수 없기 때문에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 난민이다. 미국의 난민정책 90년대 후반~유엔 성립된 2003년 이후 가장 까다롭게 심사하는 것이 난민. 이들은 전보다 더 살믜 유예화와 불안정화가 되면서 우리가 말하는 난민은, 카렌족과 같은 난민들은 강요된 속박인 ㅏ박해대문에 난임ㄴ의 삶을 선택한다기보다 난민의 범주에 몰린 사람들이고, 이들이 국민국가로 포섭되서 새 기회를 찾으려 하니 ‘난민의 국민화’로 귀속되며 미래를 찾으려는 게 강하다. 한편 난민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국가는 없다’ 운운하는 선언해봤자 국민 아니냐. 레토릭이다 어차피. 국민국가의 국민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이상이 깨지며 ‘국가가 없다’는 생각을 선언하기 위해 난민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 때는 내가 생각하는 국가관들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 정권이 있기 때문에 이 정권과 나의 철학을 분리시킨다는 선언이다. 이것이 자발적 난민화. 난민의 국민화와 국민의 난민화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출현하는 이중적 상황이다. 영국의 홈오피스 통계. 2000년 이후 시민권 딴 한국여자들이 급증했다. 1980년대에는 일본여성들이 동남아로 떠났다. 일본여성들이 너무나 많이 떠나니까 ‘거대한 탈출exodus’라고 불렸다. 이들은 어떤 난민인가? 정치적? 심리적? 둘 다지. 내가 살고 있는 고국에서 내 삶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자발적으로 떠난 사람도 많다. 박정희때 독재가 싫어서 미국으로 망명한 사람 많다. 70~90년대에서 세브란스 의과대 졸업한 사람(고급인력)의 1/3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더 좋은 기회를 찾은 거지만, 특별한 박해를 당한 건 아니지만 나의 가치와 현 국가의 이미지가 맞지 않기 때문에 난민됨을 선언하고 자발적으로 떠난 것. 나도 올레와 비슷한 기억이 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한테 데리다의 절대적 환대 개념을 배웠다. 어릴 때 동네거지들이 많았다. 매일 오지는 않고 일주일 한 번 와서 집마다 “밥줘요”한다. 냄새나고 청년거지들. 우리 집은 딸만 있는 집이었지만 엄마는 들어오라 해서 밥 다 차려줬다. 우리는 반대했다. 엄마가 그런 식으로 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이해했냐면, 데리다의 ‘환대’개념을 알지만, 부랑자들은 마치 홈리스, 국민국가가 있었지만 난민처럼 산 사람들이다. 그때 ‘보시’라는 것을 학습했는데, 굉장히 건장한 청년 남성이 우리 엄마의 호의를 받아들이며 낮에 엄마만 있을 경우에 폭행과 도난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부랑아, 난민, 이주자에 대해 그런 의심을 항상 하고 있다. 우리는 그 사람과 나의 삶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경계를 짓고 싶어한다. 그런데 데리다의 절대적 환대 개념은 ‘그 사람이 문지방을 넘을 때 나를 죽일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죽인 사람은 없다. 두려움이라는 거다. 그런데 1980년대 전두환이라는 무서운 대통령이 생기면서 거리가 굉장히 깨끗해졌다. 위생적이고 살기 좋은 국가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부랑아등이 다 끌고가서 삼청교육대에 가서 정신개조를 한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이 죽거나 정신적 후유증을 겪고 우리 주변에 살 수 없게 되었다. 어떤 환경에서 살고 싶은가? 절대적 환대? 이주자가 핸드폰 빌려달라 해서 빌려줬더니 튀었어, 환대를 했는데. 다른 방법도 있다. 모든 이주민들이 내 주위로 못오게 하는 방법도 있다. 국민국가가 가능하다. 우리는 그것을 질서가 잘 잡히고 안전하고 위생적이고 국민의 위험을 보호해줬다고 한다. 우리는 항상 이 딜레마 안에서 산다. 우리가 학습해야 하는 신념은 난민, 정서적 난민으로 내모는 상황과 동시에 박해들 때문에 한국에 들어온 난민들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 있다는 것이다. 삶의 불예측성.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국민국가 안에서 정의감과 같은 것이 관철될 수 없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좋은 구가라는 것이 환대의 윤리를 어떻게 생산해낼 수 있는 것이냐에 대한 건데 이런 생각도 든다. 좋은 국가 이미지라는 게 결국 또다른 정권에 의해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 마치 그거에 살아봤던 것처럼 안된다 한다. 우리의 절대적 환대의 위험을 무릅쓰는 가정과 거버넌스의 시스템에 대해 정교하게 언어화하고 국민국가의 이상적 모습들에 발화하는 방식의 국민됨, 글로벌 시민됨을 동시적으로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한 :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국민국가라는 것은 재난, 외침, 시장의 변동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최근들어 국민을 근대하는 국민국가가 아니고 시장의 변덕에 국민을 맡겨버린, 시장을 보호하는 국민국가가 되었고, 심리적 난민이 되었고, 제주도로 간다던가 마을을 만드는 시도도 ‘국가 안되니까 자구책을 구현하자’라는 건데, 실제로 엄청난 난민들이 생기고 있는데, 이것이 실패한 국가부터 나오는 것인지, EU로 들어가려고 난리치는데 거긴 방어적으로 들어가고 있고, 우파들이 정책을 얘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사회는 특히 어떤 면에서 실패한 국가에 속하고, 국가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고, 실망하면서 동시에 다 해놓으라고 말하고(주체는 다를 것 같지만). 그런 흐름 속에서 지금 우리 논의를 끌고왔던 것인데, 다른 차원의 논의들이 있다. 레바논같은 경우 80%가 난민. 미국 호주에서 만난 그 유학생들 만나면 자기 모든 친척들이 외국에 나가있다는 것. 쫓겨난 자와 안쫓겨났지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구태여 이걸 분석하고 나눠야 하지만, 동시에 자기가 좋아서 온 사람이랑 쫓겨난 사람이랑 같냐는 것. 그렇지만 이주의 체험, 경험, 환대나 환대없음에서 오는 경험들이 있었고, 국가가 절대적으로 환대하는 기구라 생각했는데 절대적 환대는 사실 아무데도 없는 것처럼 된 상황에 우리가 왔고, 전부 문지방에서 서성이고 있는 상태에서 지금 불안해진 사람들이 일베를 위시하여 국민은 이런 사람이다, 징징거리는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징징거리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를 부르고, 국민을 다시 호명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안전한 공간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의 수는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새로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이상국 선생님의 섬진강 메타포는 아주 훌륭하고 그 말대로 낯선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깨끗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만이 가능성이지 않을까라는 것이고, 그것은 나를 해칠수도 있지만 믿어버리는 용기, 행동과 관련되는 논의라고 생각한다.

 

이 : 마을에 폐를 끼치지 않고 다른 마을로 이동하는 부랑아. 국가가 복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펼쳐보려 한다. 80년대에는 가둬서 했지만 지금은 주는척 하면서 관리한다. 본격적으로 국가가 개입하기 이전 일종의 자율공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공간과 시기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국가가 마을까지 미치치 않았던 시대. 그런데 그런 시대는 갔다고 본다. 세계사의 흐름을 보면 근대국가가 지배하는 영역을 계속해서 확장하여 지금에 이르른 것. 국가가 없는 공간이 넓었지만 지금 지구의 표면 모두는 국가가 점령한다. 이 현실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국가로부터 심리적 물리적 박해를 받았든 도망가서 우리가 찾을 공간 역시 이미 국가의 공간인 것. 국가 밖의 공간은 죽어서 가는 것이고, 살아있는 한 우리는 국가 내로 옮길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국가공간을 줄여서 부랑아들을 문지방으로 들여놓을 것이냐의 문제보다는, 공간 안을 착한 공간, 환대의 공간으로 어떻게 만들 것이냐에 대한 문제로 보인다. 아나키스트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넓히는 문제는 굉장히 낭만적으로 보인다. 국가 내에서 자율성을 유지하며 착한 국가 환대의 국가를 어떻게 만들어내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민이라는 일시적인 현상이고 어떻게든 해결되야 하는, 위태로운 현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착한 국가를 만들며 회복해야 국가를 완전히 떠나서 회복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은가.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우리는 국가를 중심에 두고 착한 국가를 만들 전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줄행랑보다는 국가와 맞서 싸워야 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조한 : 지난주와 달라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 TV드라마에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국가 드라마가 많았지 않나. 이상국 선생님 말하는 국가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면 덜 헷갈릴 것이다. 국가는 영토 중심의 자국민 중심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그보다는 다시 도시 중심으로 마을단위까지 손을 뻗히지 않는 삶의 공간으로의 도시를 상상하면서 말들어야간다는 말들을 전에 했었고, 모인 사람들이 나이브하고 낭만적으로 가는 것은 조금 아니라는 생각을 한 거고. 이케아나 넥슨같은 국가를 떠난 지형을 보면서, 국민국가를 넘어선 새로운 시민적 공공, 공통체같은 논의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런 논의로 발전을 시켜봐야지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벌거벗은 생명이 되고 있기 때문에. 문래동에 전시가 있어 갔다 왔는데 홈리스가 집 짓는 것에 대해 결사반대하고 있었다. 국민이라고 선언된 사람들이 사람들을 쫓아내려는 강한 경향이 한국에 있는 상황에서 국가를 말하는게 위험해 보인다. 가을에 자공공을 다시 하면 공공성 개념으로 가볼 생각도 있다. ‘왜 도시가 강조되는가?’하는 생각도 든다.

 

김 : 아나키스트들이 진보적이거나 리버럴하지 않다. ‘국가가 간섭하지 마라 우리가 책임지겠다’라면서 국가의 통치체계를 거부하는 그룹은 보수적이거나 군사적인 그룹이 많다. 세계총기연합체같은 경우를 만들어서 우리가 우리의 삶을 방어할테니, 국가가 총갖고 간섭하지 말아라 등 국가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업도 세금을 도피해서 지역을 옮긴다던가 하면서 국가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보수적이거나 이상한 군사주의적 그룹들은 실제로 국가의 공권력에 대항하는 파워를 스스로 구축하고 있다. 이들이 신자유주의를 확장한다. 국가 논의에서 간과하는 것은 ‘누가 국가를 혐오하는가?’에 다양한 층위가 있다는 것이다. 재앙을 일으킨 사람에게 재앙을 회복하고 복원하라고 요청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것이 내 고민이다. 재앙의 원인에게 정의로움으로 질서를 회복해달라고 하는 것이 어처구니없고 아귀가 안 맞는다. 이 재앙을 만들거나 방관해야만 특정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관철되기 때문에 계속 재앙을 생산해내는 자한테 “우리의 피해를 복구해 주십시오”라고 호소하는 꼴이 되는 마당, 그래서 국가는 그것을 들출 경우, 밀양의 탈핵같은 것들 정책을 만들 경우 정권 자체가 유지되지 않는데, 재앙의 원인에게 동시에 구제자의 모습을 요청함으로써 정권을 더욱 오만하고 강화된 중요 행위자로 바라보는 방식으로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지 않은가. 재해가 많이 일어나는데 ‘재앙공동체’를 주시하고 있다. 재앙 이후에 계몽하는 사람들. 신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이 재앙 인프라가 있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일본 후쿠시마때도 막 요구하다가 어느순간 ‘이들은 아웃시켜야 해, 이들은 우리 삶을 지속시킬 수 없어’라면서 자생적 삶을 상상하는 공동체 층위가 생겨나고 있다. 시민들이 일반적으로 복속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 층위가 만들어지면서 해결의 방안조차도 다양하게 제안하는 그룹들이 생기니 국가가 시민공동체의 해결방식을 학습하고 모방함으로써 국가 통치체제도 약간의 선의적 해결책을 받아들인다. 국가가 1차적 해결자이자 구제자라는 상상력 자체가 시민들로 하여금 어려움이나 재앙에 대한 너무나 고착적인 해결책을 상상하게 한다. 밀양이나 세월호 사거으로 인해 낙담하고 애도하는 심리적 난민의 상황이지만 이후 재앙이후의 공동체가 삶의 철학들을 어떻게 언어화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시민의 국가에 복속되지 않는 정치체라는 희망을 억지로라도 가지려고 한다. 좋은 시민이 있어야한다는 것은 국가가 더 이상, 이 정권이 좋아질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확실히 본 것 같다. ‘우리가 주체다’라는 시민공동체들이 나오는 희망을 보고 있다.

 

이 : 국가를 뛰어넘는 상상. 해야하는 것 같다. 도시 이야기도 했고, 도시의 연대 차원 등 중요한 현상이라 본다. 도시 자체가 국가권력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가는 상황이고, 여전히 국경에 영향을 받겠지만 중요한 흐름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화, 이웃처럼 동아시아가 권역으로 확장되는 현상, 아시아적인 차원이 ‘방법으로의 아시아’라는 말도 있듯 우리 삶의 공간에 끌어들이며 국가를 넘어서려고 하는 지리적 상상을 하지 않나. 우리가 보기엔 도시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지리적 연대, 그리고 국가를 뛰어넘는 지역 아시아 차원. 이 두 상상력을 동원하며 나갈 때 국가를 길들일 수 있지 않을까. 국가를 없애는 단계는 어렵고 국가를 길들여야 할 텐데 착한 도시들간의 연대를 통해 국가를 길들이고 아시아연대 차원에서 국가를 길들이게 하고, 국가가 이주의 흐름 등을 막지 못하도록, 어느 한 국가가 착하더라도 주위가 악한 국가면 다 악하게 된다 실천을 안하니까. 한 예로 아세안같은 경우 이주를 막았는데, 지금은 국경을 트고 있다, 불법합법을 넘어서. 나는 그걸 긍정적으로 본다. 그것을 자꾸 확장시키면 흐름이 원만해지고 새로운 물을 받을 수 있는 좋은 환경, 생태적으로 건강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한 : 꿈을, 국가에 대한 꿈을 깨는 과정이 자공공 아카데미이기도 하다. 국가를 길들인다는 표현이 있었는데 대부분 이주가 가능했던 인류 역사가 오래되었던 것이고, 이동이 가능하게 되면 그것이 국가를 길들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랬을 때 아시아의 영역이 중요할 것이다. 자공공 아카데미를 끝내겠다.

 

<끝>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