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 5강 국민과 난민 사이 : 칸트와 세월호

발제_ 국민과 난민사이: 칸트와 세월호

김석수(경북대 철학과)

5강강연자

 

 

 

 

 

 

 

제가 나눠드린 자료인 이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세월호라고 어떤 성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라고 많은 정치학자, 경제학자, 법학자, 사회학자 선생님들이 접근할 수 있는데, 한국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의식구조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길래 이런일 들이 발생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음을 먹고 작업을 했던 것입니다.

‘기억’이란 단어와 ‘사유’라는 단어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요즘 학교도 그렇고 시민 강사들이 인문학을 열고 있지만 성의 없는 인문학 강좌가 될까봐 우려스럽습니다.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과 저와의 관계에서 저에 대해서 좀 아파하거나 조금 더 기뻐해 주려면 저의 과거 역사에 대한 어떤 경험치에 들어와서 함께 참여해서 공유하는 기억하는 장이 없으면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만약 여기 어떤 분하고 어릴 적부터 친해서 어떤 일을 같이 겪고 기억들이 내 속에 남아있다면, 그분이 남들에게 상처를 입을 때 그 사람에게 ‘걱정하지 마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고독해 할 때 ‘우리 예전에 그런 적 있잖아’하면서 다가가서 어루만져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너무 바쁘게 살고, 너무 경쟁적으로 살다보니까 우리가 살아왔던 과거에 삶을 공유하는 기억의 공동체가 붕괴되었다는 것이 제가 가진 문제의식입니다. 이런 기억의 공동체가 붕괴된 사회는 세월호 아니라 더 위험한 사고들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떻게서 우리사회가 기억이 붕괴된 사회로, 기억이 무너진 공동체로 휘몰려 와있는지 역사적으로 추적해서 분석해 볼까 합니다.

식민지 시절부터, 6.26를 겪고, 87 항쟁 겪은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기억의 주체’와 ‘창조의 주체’를 대비시켜 보겠습니다. 현 대통령이 목적을 가지고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 ‘창조경제’이고, 창조경제를 위해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인문학 교육 강화입니다. 그러나 저는 ‘창조경제’와 ‘인문학 교육 강화’하는 사이에 위험스런 결합일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스티브잡스가 ‘아이패드’를 발명한 것이 인문학과 기술이 만나서 가능했다고 하지만, 좋은면도 나쁜면도 상당히 많고요, 잘못하면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제적 성장의 도구로 전락할까봐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보면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박정희 대통령 거쳐 오면서 항상 강조했던 개념이 ‘새 역사 창조’였습니다. 이 새 역사 창조란 것 안에 소위 나라를 빼앗겼고, 나라를 동강냈고, 그래서 너무 연약했고 무력했고 가난했고, 이런 힘없는 나라를 어떤 형태로든 급 도약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창조’ 개념으로 자리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당시 사회로 돌아가 보면, 많은 창조적 관습을 지향하기 위해 인간 의식 개조를 시키고자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연세드신 분들은 외우고 있을,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고 해서 새 역사 창조에 매진하라고 한 것이 바로 ‘국민교육헌장’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내 한 몸 불살라라’ 요구를 굉장히 강조했었습니다. 이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그 전에 이런 단초가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뿌리가 있습니다. 초대 교육부 장관, 당시 문교부 장관하였던 안호상 선생님이 한 일자 백성민자 써서 ‘일민주의’라는 얇은 책을 내서 이승만 대통령께 받칩니다. 이분이 무엇을 주장하시냐면, 우리는 같이 살고 같이 죽는 운명 공동체다. 그래서 나 개인의 이익이나 개인의 존엄성 보다는 전체를 위해서 내 한 몸 불사르자는 생각들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이것이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한 시대를 움직였던 것입니다. 이게 남한만 그런 것은 아니고, 북한의 김일성 정권 시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황장엽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간 개조론, 사회개조론, 자연개조론’을 통해서 북한 내부에 상당한 변혁적 주장을 했고, 우리도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하였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남한이나 북한이나 서구의 근대화 과정 사이에는 대조 되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근대화’란 말을 쓰고 있지만, 우리는 국가의 명령안에서 유지되고 민족의 이름으로 근대화된 사회였지만, 서양은 상인들이 밑에서부터 자신들의 욕구가 분출되면서 진행되어 서구의 근대화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태생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우리는 개인이란 존재가 그 속에서 치고 들어갈 자리가 별로 없었어요. 이런 어떤 상황들이 어떻게 이어지냐면 교육현장에서 명령식 교육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학교 곳곳에서 선생님은 학생들한테 답을 가진자로서 빨리 외워서 따라오라고 주입과 명령을 통한 수동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이 우리 안에 들어왔고, 국가와 사회를 비판하면 국가에 충성하지 않은 자이고 위험한 자가 되죠. 과거의 군사정권 시절에는 미국에서 건너온 자유주의조차도 반동이 됩니다. 오늘날에는 자유주의가 보수적인 맥락에서 이해되지만 그때는 국가를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이 됩니다. 이런면에서 조국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진행되어온 역사는 스스로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기르는 것이 아니라 끌고가는 식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공화당 정권 시절에 250만 정도의 시골의 인구가 대도시로 이동이 됩니다. 이동하면서 서울 중심, 대도시 중심으로 중앙중심으로 결집시켜서 급성장을 합니다. 우리 근대화 과정에서 마을이 총체적으로 붕괴 됩니다.

저는 마을과 장소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대구에 보시면 오래된 계산 성당이 있고, ‘이상화 시인’이 살았던 집이 있습니다. 독립운동 했던 많은이들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지역을 중구청에서 개발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당시 대구에 있는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강력한 서명운동을 해서 살려놓았습니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이상화 시를 읽고 직접 와요.

장소는 기억이 묻어 있는 곳인데, 근대화 과정에서 쓸어버리고 고층 아파트나 빌딩으로 채워가는 방식으로 개발이 되잖아요. 그 과정에서 장소는 다 붕괴되고 물리적 공간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건물하나에서부터 인간 생각에 세계까지 기억으로부터 도망가는, 그런데 우리가 어떨 때 기억으로부터 도망갑니까?

요즘 제가 <철학상담> 강의를 하고 있어서 말입니다만, 한 140여명 수강해요. 첫 시간에 백지를 나눠주면서 이름도 적지말고 소속도 적지말고 아파하는 부분을 그대로 적어내라고 합니다. 반학기는 이론 수업을 하고 반학기는 적어낸 것을 가지고 집단상담을 합니다. 그 내용을 읽고 있으면 눈물이 나서 읽을 수가 없어요. 아픈 친구들이 많고, 힘든 친구들이 많은지. 한 학기 수업이 끝날 때마다 제발 손 좀 잡고 헤어져라. 만나서 우리 한 학기 어땠는지 얘기하고 과거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하라고. 그러나 요즘 수업이 끝나도 다들 뿔뿔히 흩어지면서 과거를 들어주고 이야기할 서로를 만나줄 마음이 없어요. 우리 의식 속에는 우리 근대화 과정에서 보면 나라 빼앗긴 아픔이 남았죠, 전쟁으로 초토화 된 아픔이 남아있죠. 우리가 자랄 때, 아버지한테 구타를 당하고 자랐다면 그 상처를 떠올리고 싶지 않죠? 그 상처로부터 도망가기 위해서 그 기억의 작동을 치매환자처럼 마비시킨 거예요. 우리는 상상의 날개를 펴고 미래로만 달려가려고 했지. 과거는 잊어버리고 살았던 거예요. 모든 것에서 과거의 흔적이 보이면 배우니까 지워버리고 기억을 탈각시키는 근대화 과정을 진행해 온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지역을 잃었고, 마을을 잃었고, 이웃을 잃었고, 나와 기억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잃었습니다. 기억들을 가져야만 이야기가 성립되잖아요.

공식적인 이야기들은 답을 안 주잖아요. 우리가 커피집에서 토닥토닥 이야기 할 때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을 더듬으면서 같이 회상하면서 내용을 주고 받아야 이야기가 되잖아요. 이야기가 죽고, 마을이 죽고, 총체적으로 의식체계가 뿌리를 잃어버린 거예요. 이런 상황 속에서는 누가 아파도 아프지 않고, 누가 기뻐도 기쁘지 않은 상황이 작동해 왔다는 것입니다. 기억하는 삶에서부터 상상하는 삶으로 격변한 것입니다. 물론 상상은 기억에도 관여를 하죠. 우리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할 정도로 사실 그대로 기억하지 못하잖아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삶이 어떻습니까? 서울역에 내려서 전철을 타보면 옛날에 2,30년 서울살다 떠나서 고향같은 맛이 있어요. 전철을 타보면 변함없는 것은 모두 핸드폰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 산모가 있어도, 짐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가 있어도 저분 힘들지 않을까 관심이 없어요. 기억의 공동체가 붕괴되고 상상의 공동체로 급격히 빨려 들어간 상황을 보여 줍니다. 제가 얼마전 <hur> 라는 영화를 봤는데, 주인공이 아내와 이혼을 하잖아요. 외로워서 로운 연인이 핸드폰 안에 있죠. 잘 때도 옆에 있고, 화장실에도 있고, 언제든 보고 싶으면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하루는 지하철 계단 올라가다 고장이 나서 안절부절 못하게 되죠. 그러자 온라인 상 연인이 미안해서 사람 여인을 소개하죠. 결국은 헤어지죠? 왜 그랬을까요?

저는 몸이 관계를 맺지 않은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봐요. 몸이 관계를 맺으면 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있고, 기억들을 갖게 되요. 아바타들은 사실은 기억이 없어요. 지극히 개인주의로의 변화도 기억 공동체의 붕괴입니다.

기억을 잃어버리고 싶거나 기억을 떨쳐버리고 싶은 병적인 몸부림들이 상상 쪽으로 급변하게 몰입을 해와요. 이 과정이 오늘날 공동체 의식의 붕괴로 이어져서, 타인의 아픔에 대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선주도 배를 탈 사람들이 어떻게 될까에 대한 생각세계가 작동하고 있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해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유의 문제를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한병철 선생의 <피로사회>를 읽으면서 재밌는 표현을 발견했어요. “언제 우리가 고독해 본 적 있는가? 아니 고독할 시간조차 있는가? 고독을 느끼기는 하는가?”라고 이런 말들을 피로사회와 관련하여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제대로 생각 좀 하고 사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보고 있으면 서문에서 인간이 능력에는 감성, 지성, 이성 능력이 있다고 해요. 감성은 밖 깥 세계들을 내가 직접 만나면서 수많은 다양성들을 접하는 능력이고, 감성이 능력을 통해서 만나며 그 만난 것들을 내가 어떻게 해야 해요. 내 나름대로 분류 정리해야겠죠. 누구나 추상작용을 하죠. 추상작용을 왜 합니까? 제 생각에는 우리 앞에 쏟아지는 이 세계가 너무나 특수적이고 너무나 다양한 이 세계, 이런 것들을 접할 때 우연성이 갖다 주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우연성이 걱정거리가 되죠. 집에 가다가 죽을지 안 죽을지, 우연성이 걱정이 되죠. 수많은 앞의 일들이 내적 불가능 상태로 솓아 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살아야 되고, 예측 가능한 상태로 전환시켜야 되요. 전환시키려면 우연성과 고유성을 제거시키고 법칙화 시켜야 해요. 이 과정이 사유의 추상작용을 진행시키게 되요.

예를 들면, 영등포를 살고 있는데 영등포역을 지나가는데, 길이 직선으로 되어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느날 공사를 해서 곡선이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것을 모르고 직선인줄 가다가 받아서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추상작용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은 세계가 변화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마비가 되어버릴 수 있어요. 세계가 변화고 있으면 내 추상이 가지고 있는 봉건성과 형식성도 깨고 다시 재조정 활동을 해야 하잖아요. 그러나 그것을 안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국 근대화 시절에 우리가 이 세상을 보면서 ‘이건 너무 국가가 독재하는 거 아닌가?, 이건 일방적으로 군사적인 명령을 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생각을 하려고 하면, 국가의 반역자, 시대의 반역자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현실에 다가가서 고민하는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은 위험한 생각이 되는 겁니다.

이에 착안하여 아렌트가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중요하게 본 것입니다. 학교에서 많은 이론을 배우잖아요. 이론을 학습에서 현장에서 어떻게 되요? 안되죠 그대로? 이론 내용을 생각 내용을 판단한다는 것은 현실에 적용하는 것을 판단하는 거죠. 적용해서 문제있다고 소리치면 그게 문제라고 하니까 판단 안하게 되는 거죠. 판단 안하는 방식들이 우리 교육에 많이 지배 했어요. 학교에서는 공부하는 책이 따로 있고, 세상 토론하는 것이 따로 있지, 세상의 내용을 가지고 와서 공부하는 데 이야기하면 위험한 수준에서 문제가 되요. 명령식 교육에서는 생각하면 안 돼요.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이상한데요? 그런 것을 해야 됩니까? 왜 외워야 돼죠? 받아드리기 어려운데요?” 이러면 사람이 ‘그렇게 대들면 안 돼지’하면서 오히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간으로 규정하고 비판을 합니다. 가만히 듣고 외워하지 생각하는 의문을 제기하면 안 됩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랬잖아요.  소피스트들이 잘났다고 그러니 시장에 나가 당신들이 얘기하는 그것이 맞느냐고 질문하니, 전문가에 불응하고, 국가를 위기로 몰고간다고 감방에 갔잖아요.

계속 물음을 제기하는 생각을 못하게 하는 거잖아요. 급성장을 하는 조국 근대화 시절에 명령식 방식의 교육이 이루어질 때, 제대로 의문을 하는 사유를 할 수 없고, 그런 사유를 통해 현실에 나가 판단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어요.

이런 것들이 세월호 배가 있을 때, 선주가 배를 개조하면 어떤 문제를 나을지, 선장이 나가버리면 어떤 문제가 나을지, 평소에 그런 현실과 연관시켜 생각을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조심스럽게 언급하자면 학생들도 현실과 연관시키는 훈련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지금 우리 대학 수능 방식도 선생님이 답을 주고 외우는 방식이 되고 있다는 것은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현실앞에서 용기있게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국가 중심의 사회에서 강한 지배와 구속을 받으면 상대적으로 탈출 욕구도 강해집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아버지가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이고 명령적이면 자란 아이는 빨리 가정을 탈출하려고 합니다. 주말에 집에 안 가고 나와 있습니다. 과거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안에서 국가 구성원들을 명령식 방식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어느 집단보다도 강합니다.

그것이 무엇을 낳는나면, 과다 국가지배사회는 역설적으로 과다시장지배 사회를 만듭니다. 시장과 국가의 사이가 있다면 국가는 공동체 전체의 문제를 만들었다면 시장은 개인의 욕구가 무한히 충족되는 세계를 만듭니다.

서구 중세 사회에서도 봉건적인 교회국가가 통제하니까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근대 부르주아들이 시장을 통해서 국가를 전복하는 부르주아들이 만든 것이 로크와 같은 최소 정부. 국가의 기능을 최소화 시키고, 시장의 최대화 시키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거죠.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국가의 기능을 최소화 시키고 시장을 최대화 시키는 방식이잖아요, 우리사회는 어느 사회보다 과다국가독점사회에서 과다시장숭배사회로 옮겨옵니다. 개인의 욕구가 무한대로 펼쳐질 수 있는 가능성을 그 속에서 펼쳐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가정도 시장, 학교도 시장, 시장 아닌 곳이 없어요.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상품이 되는 거예요. 학교에서 가정에서 상품가치가 없는 존재들은 인정을 받을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사회가 옮겨왔다는 것입니다. 시장은 자유를 주는 대신에 경쟁을 요구합니다. 명령식 교육을 받고 복종적 사유를 하다가 경쟁식 교육을 하면 도구적 사유, 계산적 사유를 안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복종적 사유에서 계산적 사유로 급선회 합니다.

어떤 철학자가 한국에 와서 한국사회는 진정한 공동체주의도 없고, 진정한 자유주의도 없다. 사이비 공동체주의와 사이비 자유주의가 혼종되어 있는 사회다. 어떨 때는 굉장히 이기적인 인간들이 많은데 어떨 때는 가족을 위해 목숨을 겁니다. 학연에 목숨을 겁니다. 과다국가지배사회에서 과다시장사회로 오면서 무서워서 복종하다가 지금은 바빠서 사유할 시간이 없습니다.

다시 세월호 사건으로 돌아가면 선주도 선장도 국가도 시장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시장안에서 최고의 왕은 돈이잖아요. 자본은 우리에게 뭘 요구하나요.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할 때 목숨을 건 도약을 합니다. 자본은 자기 증식을 위해서 인간의 분리를 요구 합니다. 인간이 연대하는 거 자본이 제일 싫어합니다. 기업주나 자본가 입장에서는 연대해서 노동조합 만드는 거 싫어합니다. 그저 경쟁시켜서 싸우게 만들어 생산성을 굴립니다. 시장의 이런 흐름들은 우리의 분리를 요구하고 각자 고립되어 있습니다.

이런 고립이 되면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고통스러워도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대학의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의 어떤 고학생이 수업이 끝나고 자문을 구하러 갔는데, 선생님 반응이 없는 겁니다. 정년이 얼마 안 남은 선생님이 학교가 이래서 되곘냐며 걱정을 하십니다. 국립대 성과급 연봉제 아닙니까. 자신의 연봉을 올리고 정년보장 받기 위해 자기 연구에 고립 될 수밖에 없고,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어떤 고통이 있는지 시간을 내기에는 너무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기업 공동체가 상실되고 국가중심의 무사유가 지배했던 87년 6월 이전의 사회는 개인이 없었습니다. 그 이후 시민운동이 일어나고 시장사회로 변해서 엄청나게 개인이 쏟아져 나왔는데 거기에 공동체가 없습니다. 사유 부재와 기억 부재 사회가 만드는 한국 현대사의 구조는 극복되지 않으면 세월호가 계속 반복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기억의 공동체를 만들어 내고 도시 안에서 마을을 재구성해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들이 우리 안에 마련되지 않으면 우리사회의 미래를 어두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억하는 인간,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공동체를 다시 만들어 내야 합니다.

가라타니 고진이 어소시에이셔니즘, 소생산자 연대를 위한 소비자 운동을 이야기 하면서 여러 가지 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한 꼬뮤니즘 같은 꿈을 꾸는 것이 희망을 심는 것이 아니겠냐고 했습니다.

정리를 하면 인간이 어떨 때 겸손해지죠? 죽음을 앞에 직면하거나 실수 했을 때, 엄청난 고통이 다가 올 때, 만약 인간에 몸둥아리가 없고 생각하는 정신만 있다고 하면 과연 인간이 겸손해 질까? 내 몸이 있기에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고, 내 몸이 있기에 내 생각도 맘대로 안 되죠. 생각대로 살 수가 없고, 맘대로 안 되잖아요. 몸이 살아있다는 것은 생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몸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살면 정이 흐르잖아요. 몸이 있는 인간이 아닌 생각들만 있는 세계에 살면, 사이버 공간에서 몸이 없는 아바타들로 만나면 정겨운 공동체가 가능한가요? 몸을 같이 나눈 기억의 세계가 없는 거잖아요. 과거 시제로 돌아가면 국가가 몸을 억압했어요. 지금은 시장이 몸을 상품화 하고 있어요. 몸이 억압되든 상품화 되든 인간의 사유가 소통이 진정한 고통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가 그것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몸놀이와 마음 놀이가 만나는 공동체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억 공동체를 만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기억으로 도망갈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어루만지고 서로를 아끼는 형태로 발전해 가야만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토론시간이 있으니 짤막하게 마치겠습니다.

토론_ 생각없는 세상, 현실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사유하기, 잘못을 기억하는 기억의 공동체. 

김석수, 김희옥, 조한혜정

5강종합

 

 

 

 

 

 

 

김희옥 : 오늘이 20년 전 상품사고도 있던 날이더라구요, 하자 상황을 짚어보면, 하자 작업장학교는 2011년 후쿠시마의 충격이 진동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세월호 충격의 진동은 또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것이 충격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부터 생각하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아침 하자에서 반다나 시바의 “씨앗을 껴안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반다나 시바가 우리가 다시 생각하자고 하는 것 중에 “earth democracy”라고 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치적 시스템은 그런 것일 것이다. 그 단어를 듣고, ‘지구적 민주주의’로 번역을 했더라구요. 그러나 earth를 지구로 해석하는게 제한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지구라고 하면 지구라는 행성이 떠오르고, 지구본이 떠오는데, 반다나 시바가 씨앗, 세대에 걸쳐 이어오는 기억을 이야기 할 때는 흙이거나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구’를 손 안에 쥐고 보고 있는 것 같은 인식 주체로 자기를 위치지우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칸트는 ‘나와 세계’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기도 했는데 ‘earth democracy“라고 했을 때, 우리가 세계 밖에 존재하는 내가 아니고, 인식이 확대되어야 하는데 ‘나’를 공고히 생각이나 기억을 판단하고 소유하는 나가 아니라, 우주와 자연과 세계의 일부로서의 나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전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주제가 국민과 난민 사이였잖아요. 우리의 정체성이 표류하고, 국가의 심화에 매달릴 필요 없다고 느끼는, 국가와 싸울 필요 없고, 우리의 기억의 주춧돌이 표류하고 말을 할때도 모순적인, 그래서 칸트 연구자로서 김석수 선생님께서 근대가 ’나‘를 세련되게 설명해 왔는데, 식민지 역사를 가진 사람으로서 ‘세월호’를 겪고 ‘나’를 어떻게 전향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병선: 연세대 ‘한국의 문화연구’ 학생입니다. 공동체 붕괴와 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주제에서 공동체라는 키워드라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기억의 공동체라고 했을 때,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지점이라고 이야기가 되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야 할 지점이 존재했었나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구요. 엘리트가 만들어온 서사에서 사회진화론에 근거가 과거만 있었다고 했는데, 바람직한 기억의 공동체를 가져본 적이 있었는지. 그러면 이 공동체를 돌아가야 할 때는 좋은 것일 텐데, 좋은 것의 조건이란 무엇인지. ‘일베’를 기억의 공동체로 부를 수 없는가. 좋은 것을 돌아가야 한다면 감정적으로는 ‘일베’를 기억의 공동체로 볼 수 없지만, 형식논리로만 본다면 기억의 공동체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공동체, 돌아가야 할 공동체의 조건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메루 : 로드스콜라 메루라고 하고요. 저희 조는 질문 보다는 했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자본시장와 근대적 마인드 그리고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시장에서 사람을 상품화하다보니 사람의 목숨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세월호 선장에 대해 직업윤리라는 이야기 나왔어요. 자신이 하는일에 자부심과 행복감을 가져야 하니까 직업윤리보다 먹고 살아야 되니까 세월호 선장같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은지. 세월호 인양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근대적인 마인드 생각 해 봤어요. 서구는 시민사회 구축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근대가 이루어져 왔는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 외래에 의해 시민사회 구축을 생략하고 근대화가 이루어진 것 같다.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며 퉁치자라고 하면서 세월호 안에는 두 세 사람이 있으니 인양하자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별토론자 그룹 : 기억을 나눈다는 것에 집중에서 이야기 했습니다. 기억을 나누는 공동체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로 시작하면서 기억을 공유하는 생소함이 있고, 한편으로는 기억에 얽매이는 것으로 다가 온다. 힘들게 기억으로부터 잊고 싶었는데 나누라는 것은 무엇인지. 누군가는 그런 기억을 나누는 모임을 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100% 공감을 못하더라고 경청과 공감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너가 나의 이야기를 공감하지 못할 것이기에 이야기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공감을 못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짜증났던 경험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었어요. 기억을 나눈다는 것이 개개인의 위로를 위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기억의 공동체는 아닐 것 이고, 이 사회가 자신의 약한 모습을 내보이기 어려워서 그런 자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공적인 자리가 된다면 무엇일지 경험이 없어서 막연했습니다.

김석수 : 다른 각도에서 얘기를 들릴 수도 있었는데, 전문적이 논의가 되는 줄로 편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까전 소모임에 가서 못 다했던 이야기를 다시 좀 했고, 오늘 모두 발언에 아쉬움이 있고. 지혜를 모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선은 우주와 세계와 나를 하나로 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칸트가 분리해서 보는 면이 있지 않는가?라는 질문에는 학자들 간의 논의일 수도 있고, 칸트 철학을 생태주의 위배되는 인간 중심 철학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칸트는 인간과 생태주의를 비판적으로 조합하는 철학자라는 평도 있습니다.

칸트의 생각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마냥 선물을 제공하는 고향 같은 곳은 아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폭풍이 오고,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이 자연적 조건을 마냥 받아들이고 따라갈 수 있을 만큼 바보는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자연과 거리를 두고 바라 볼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자연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지만 최소한 자연에 대해서 내가 나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능력 범위 안에서는 집을 지어야겠다는 것이죠. 그 집을 짓는 게 칸트가 말하는 이성의 집이죠. 칸트가 조심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세계들에서 내가 집을 지었다고 해서 그 세계가 내 맘대로 지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을 해요. 전문용어로 칸트가 물자체라고 해요, 존재 자체. 물자체의 세계는 인간이 좌지우지 할 수 없다. 역사철학에 가면 자연은 인간들이 함부로 할 수 없도록 의도하고 계신다고 해요. 때문에 인간이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자연을 초감성적인 세계라고 표현 합니다. 그런 세계에 대해서 칸트가 오히려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존경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얘기해요. 우리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이 세상에 대해 내가 마음의 정성스러운 어떤 착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그 세계로 다가가서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먹고사는 문제에서 칼을 들고 망치를 들고 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이다. 나아가 칸트는 우리가 사는 지구는 모두가 방문할 권리가 있다. 누가 주인이고 지배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은 대등한 시민이다. 그래서 세계시민사회론을 제안 합니다. 그 제안에 입각하여 국제연합, 국제연명이 뿌리를 두고 있죠. 그런면에서 자연 정복적인 근대적인 인간은 아니고 오히려 비판과 우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조한 : 칸트가 공고하게 ‘나’와 ‘대’상을 놓는 접근 했고, 지금은 ‘이성의 집’을 오타구가 되었음을 연결키시는 이야기도 있거든요.

김석수 : 칸트를 비판한 헤겔이나 칸트를 비판하는 하이데거 입장에서 나온 이야기. 원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평가 받기 억울한 측면이 있어요. 칸트는 밖에서 예상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내가 무방비 상태로 그냥 휘말려가거나 노출될 수 없기에 정리해야한다고 보고, 칸트는 사유 능력 안에 세상을 정리하는 능력을 범주하고 있고, 범주를 통해 이것을 정리할 수밖에 없다고 봐요. 살아야 되니까, 그렇지만 그 세계 전체를 정리할 수 없다고 봐요. 신이 아니니까. 정리 불가능한 세계를 인정해요. 그러나 근대사회가 나은 위험한 것은 정리 불가능한 것까지 정리하려고 해요. 헤겔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에서 칸트는 인간의 겸손함에 대해 지극히 강조했어요. 칸트와 맑스를 같은 철학자로 보는 가라타니 고진이 무슨 말을 하나면, ‘인간이 앞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누구도 상품으로 취급받지 않고 목적으로 대우받는 목적의 나라가 반드시 도래해야 한다.’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것이 맑스가 이야기하는 누구나 노동 소외 받지 않고. 인간이 고귀한 존재로 살아가는 공산사회와 칸트가 말한 목적의 나라가 같다.‘ 고진이 칸트에 독해에서 중요한 포인트.

저는 이미 칸트를 떠났지만, 칸트 신봉자였는데, 고백을 하자면 여기계신 분들은 존경이란 단어를 좋아하냐요? 사랑이라는 단어를 좋아할까요? 학교 선생님들은 사랑이란 단어를 추구할까요? 학교 교사들은 존경 추구할까요? 대부분의 선생님들의 의식 속에는 학생들한테 존경을 받고 싶어해요. ‘존경’이라는 단어는 거리를 둔다는 게 들어있죠. 사랑이라는 단어는 거리를 좁힙니다. 가지려고도 하고 소유하려하기도 하고, 근데 제가 칸티안으로 살면서 상대에게 거리를 뒀고, 결함이 없는 존재가 되려고 모범적인 인간이 되려고 합니다. 과다한 자기반성. 끊임없이 말을 해놓고 반성하고. 저를 괴롭히더라고요. 그렇게 사니까 친구가 다 사라져 버렸어요. 칸티안으로 살다가 고독해서 죽겠구나. 낭만주의로 방향을 바꾼지 몇 년이 되었어요.

과다 결벽증, 끊임없이 자기반성 합니다. 잠도 못하고 돌아보면서 잘못한 인간이 너무 밉고 죽고 싶은 거예요. 현대 사상가 중에 자크 라깡이 있잖아요. 라깡이 글 중에 사드와 칸트가 있어요. 칸트는 사드를 닮았다고 분석해요. 도덕적 자학행위. 너무 반성하면 병들어요. 저는 둥글둘글 살려고 해요. 원칙주의, 순수 동기주의 그런 게 저를 힘들게 만들었어요.

조한 : 6, 7년 전에 우울이 온 것이 시대적 상황과 상관있나요? 나이와 상관있나요?

김석수 : 원래 영문학 공부하다 철학으로 옮겨가서 남다른 삶에 대한 애착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너무 순수했던 철학에 열정은 어디가고 남아 있는 것은 그저 그런 사람이 되 버린 것. 제가 모든 것들이 일상 속에서 쓰러져가고 있구나. 이렇게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살아왔던 흔적 속에서 떠오르면서 제 자신을 너무 싫어하기 시작했죠. 그것에 대한 두려움, 불안, ‘사람들 앞에 설 자격도 없다’ 엄청난 공포같은 것들이 몰려와서 잠도 못자고 시달렸죠. 학교를 그만 둘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칸트가 저를 너무 그렇게 몰아부쳤던 것이죠.

이후에 제가 극복하는 과정은 시민을 많이 만났습니다. 노숙자를 만나고, 교도소 계신분들 청소년 소년원 장애자가 되신 분들 만나고, 노점상 아주머니 만나러 강의를 다녔어요. 달동네 독거노인 만나러 다니고, 그러면서 제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지를 처절하게 느꼈죠. 제가 사치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이따위 고민은 아니구나 하면서 친구를 발견했고, 공부를 하면서 세상을 다르게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조한 : 같이 컨퍼런스 할 때, 김석수 선생님이 돋보이셔서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계셔서 인 듯 합니다. 다음주 자공공 아카데미가 정신분석 강연 합니다.

김석수 : 라깡이 칸트 영향을 되게 많이 받았습니다. 라깡을 보면 거울이론이 나오잖아요. 여러분 아침에 거울보고 나가시죠. 어떤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있는데, 엄마가 옷을 예쁘게 입히고 단장을 해서 아이를 내 보내는데 이 아이가 자기가 너무 잘 생기고 예뻐서 멋을 내고 다니는데 어느날 아이가 엄마 한테 뛰어와서 ‘엄마 나 어떻게 얼굴이 깨졌어요.’ 하는 거예요. ‘어디보자 안 깨졌잖아,’ ‘이리와 깨졌어,’ 하며 거울 앞에서 보여주는 데. 얼굴이 아니라 거울이 깨져 있어요. 그 아이는 얼굴이 깨졌는지, 거울이 깨졌는지 구분 못하는 거예요. 이 상황이 오늘 강의 안에서도 사유 안에 갇힌 거예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고통이 아픔이 없을 리 없어졌잖아요. 아픔이 너무 심하면 생각 속으로 숨어버리거나, 생각을 넘어가려 합니다. 생각 속에 숨어서 세상과 관계를 끊어버려요. 그리고 생각 속에서 친구를 만들어요, 생각 속의 친구와 자꾸 대화를 하다보면 생각 속에 친구가 진짜 친구가 되는 거예요.

길거리 가시다가 정신이 안 좋으신 분을 만나면 혼자 대화를 해요. 그 분은 생각 속에 존재와 대화하는 거예요.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어요.

또 하나는 책상 보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지만 때론 책상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어떨 때에요? 저는 부러운데. 왜 부러우냐면 제 생각이 골치가 아파서. 생각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

처음에 라틴어 배울 때 첫 시간에 키가 190cm 되는 신부님이 칠판에 뭐라고 적는거예요, 나중에 들어보니까 ‘와인 안에 진리가 있다.’말을 처음 배웠어요. 인간이 태어나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술과 역사가 진행되어 왔어요. 술은 두 가지 기능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하늘을 올라가는 길, 생각을 멈추게 하는 무의식 세계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생각이 복잡할 때 술 마시고 싶지 않아요? 생각이 너무 힘들 때는 성당에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며 생각을 놓아버리고 싶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놓아버리거나 생각에 갇혀버리거나, 둘 다 제가 말하는 생각은 아니예요. 생각은 힘들어도 현실에 나와야 되고 현실에 부딪히면서 생각이 교정되고 생각의 내용을 담아서 새롭게 태어나야 해요.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우리 역사를 보면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생각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철학이 관념적이예요. 사상지나 월간 계벽 같은 전부 그런 거예요. 요즘은 어떻게 되냐면, 생각이 미쳐서 돈 독 올랐어요.

제가 볼 때 생각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그건 세월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생각이 현실에 나와서 만나서 활동하는 것으로 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 현장에서 해야 할 일이 뭐냐면 마이클 샌델을 보면서 저분이 존 롤스를 공격하면서 어쩌다 스타 교수가 되었을 지 강의를 유심히 분석했어요. 이 분이 예를 기가 막히게 들어요. 예라는 게 어떤 기능을 하냐면. 생각과 현실을 매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학생들이 집에서 싸우다가 학교 수업을 들어가 뭔가를 가르쳐 주는데, 그게 상관없는 거예요. 사는 거 따로 공부하는 거 따로 인거예요. 개는 삶의 문제가 풀리지 않으니까 재미가 없어. 그냥 대학가야 하니까 하는 거예요. 현실과 관계없는 사유놀이. 교육 현장의 문제점으로 느껴집니다. 오늘 수업 시간의 생각에 세계가 현실에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연결시켜줘야 하는데, 그러면 교육자가 예를 들어줘야 하고, 배우는 학생들은 예를 들어달라고 요구해야 해요. 이렇게 해서 소통구조로 가야 사유가 만든 허상과 대화를 하지 않고, 사유가 현실에 빨려 들어가서 자기가 사라져 버리지 않는 상황이 되는 거죠. 사유와 현실의 긴장이 예를 통해서 생깁니다. 하느님도 보십쇼. 인간 세계에 자기 좀 보여주려고 애를 씁니다. 당신이 안 보이니까 인간들이 어딨냐고 의문를 제기해요. 그래서 예수님을 보냈어. 제가 볼 때는 예수는 이론과 현실을 이어주는 예입니다. 예의 발굴은 학습 통해 되는 게 아니예요. 끊임없는 현실 속의 훈련 속에서 습득이 되는 것이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실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생각이 많아서 아파해야 하는데. 사유가 도무지 아파하려고 하지 않고 피해 버려요. 이런 일이 일상화가 되어 있으면 세월호는 언제나 어디서나 일어납니다. 이것이 기본 생각입니다.

기억 공동체 이게 좀 애매하다라고 말씀 하시면서, ‘돌아가야 할 지점이 존재하는 거냐. 좋은 공동체 기준이 뭐냐.’ 하셨는데요.

제가 왜 이런 용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냐면 이런 겁니다. 제가 만약 치매에 걸렸다면,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몰라요. 제가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잘못한 것을 알아요. 기억하는 이유는 제가 잘못한 것을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원형적인 좋은 공동체가 있어서, 유토피아를 찾아서 미래로 가는 거처럼, 원래 좋은 나라가 있어서 그 나라 돌아가려는 원본주의적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못을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돌아 가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부 자기 잘못을 돌아보는 기억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한나 아렌트를 떠올립니다. 아렌트의 박사논문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개념’에 관한 것입니다. 무수한 주제를 두고서 하이데거와 사랑을 했던 제자이기도 하고요. 하이데거는 하이델르그 대학 총장하며 히틀러 앞잡이가 되기도 하고요. 연인이자 스승이었던 분이 그런 역할을 하는 거 보고 유대인 아렌트가 얼마나 아파겠습니까. 난민이 되어 독일과 프랑스에서 쫓겨나서 미국 가서 국적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했던 그가 왜 사랑이란 것을 선택 했겠습니다. 박사논문 앞부분에 절대자에 대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가 서울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어디서 자취를 했냐면 산 꼭대기에 살았어요. 물이 안 나와서 학교 가서 수돗물 틀어 세수하고. 그런 시절에 너무 못 살았기에 때문에 너무 잘 사는 사람 보면 이해가 안 갔어요. 그때 자본론을 책을 접하게 되면서 저도 공부하던 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렌트란 사람이 국적을 잃고 살면서 왜 사랑이라는 개념을 붙잡았을까요. 제가 사직동 독립문 뒤쪽에 살 때 할머님이 새벽 교회를 다니셨어요. 방이 세 개 였는데, 제가 밤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전기 쓰는 일이 없어요. 꼭 전기료 계산할 때, 1/2로 나누는 거예요. 제가 할머니한테 ‘가난한 학생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요. 할머니가 다 써넣고 어떻게 그러냐고’ 했더니, 할머니가 ‘교회를 안 다녀서 그래’ 그러는 거예요. 제가 아렌트 박사논문 읽으면서 그 할머니가 떠오르는 거예요.

아렌트가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장소가 있는, 마을이 있는, 이웃이 있는 동네를 떠나서, 천상의 절대자를 사랑하노라고 하면서 이웃의 아파하고 있는 할머니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예요. 이웃의 몸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하늘의 절대자를 사랑해서 뭐하냐는 거예요. 그게 바로 즉 전체주의를 만든다는 거예요. 이웃에 있는 몸을 가진 소중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보편적인 절대자를 사랑하는게 전체주의를 만든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웃을 사랑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 아렌트가 기억을 끌고 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 중 ‘고백’ 있고, 기억장이 있어요. 아렌트가 그것을 보면서 기억을 연구해요. 아렌트가 사랑의 진정한 샘은 기억에 있다. 왜 그러냐 하면 원죄를 느끼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면 죄를 못 느껴요. 죄를 짓는다는 것을 자각하면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어요. 용서의 공동체, 화해의 공동체는 기억이 마비된 사회에서 가능하지 않아요. 그런 삶을 살자는 것이지 에덴동산이나 낙원 같은 곳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돌아가자고 ‘기억의 공동체’를 쓴 것은 아닙니다.

저는 고등학교도 재수, 대학도 재수 했습니다. 제가 사회운동하면서 느꼈던 것이 우리 사회에 진정한 진보가 있는가, 진정한 보수가 있는가. 저는 단언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양파 보다 더 강한파가 있습니다. 바로 학벌파가 있습니다. 우리사회에 국가 권력을 만드는 데, 시장을 만드는데 다 학벌파가 개입을 했습니다. 과다국가지배사회 과다시장지배사회 안에서 기억이 무너지고 사유가 무너지는 그 일을 우리교육이 일정부분 책임지고 있습니다. 저는 국가의 제도를 아무리 바꿔도 경제를 아무리 바꿔도 세월호는 계속 터진다고 봅니다. 교육이 안 바뀌면요.

그런면에서 사유를 길러주는 방법론과 의식구조가 바뀌야만 세월호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도 몇 개 시스템 새롭게 구축한다고 바뀐다고 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수업 듣는 학생들 이름을 외워요. 안 외워지는데 외워요. ‘선생님 오늘 제 이름을 불렀어요.’ 하면 그 친구는 자기 이름을 기억해준다는 것을 너무 고마워하는 거예요.

이혼한 가정이 굉장히 많잖아요. 청소년 시절에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거예요. 학교에 와서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러면 선생님은 뭐냐면 무수히 많은 다양한 아픔을 가진 존재들이 앞에 있을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그분들의 세계에 경청하는 마음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가장 훌륭한 선생님은 잘 듣는 선생님 입니다. 듣기 보다는 말하려고 하는 선생님은 이것은 제가 볼 때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학교 교육에 있어서 선생님들이 수많은 학생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다시 이론으로 길러내는 작업들을 성실하게 하는 교육의 현장, 서로 주체가 되는 교육의 과정을 만들지 못하고 국가처럼 명령하는 주체, 시장에서는 계산하는 주체, 물건으로 취급하는 그런 주체를 양산하는 교육이 계속 존재하고 있는 이상, 시민교육이든, 노인교육이든, 그런 교육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가능성 없다고 봅니다.

제 글을 보고 세월호를 터졌다고 해서 앞에서 국가문제를 논의하고 시장 문제를 논의 했는데 뒤에 대안은 어디가 버리고 국가는 없고, 시장은 없고, 교육만 남았네라고 하셨는데. 저의 글의 논지는 국가보다 시장보다 근원적 권력이 바로 교육 권력이라고 봅니다. 기억의 공동체, 사유 문제는 교육 권력의 문제라고 봅니다. 이것은 정치철학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세월호를 바라 볼 때 많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제도적인 문제를 바꿔야 된다고 보는데 저는 철학하는 사람이라 우리들의 의식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그 의식을 낳는 상황이 어디서 오는가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조한: 김석수 원고 보시면 한국의 근대 국가가 한국의 근대 역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식민지 나라 잃고 굉장히 경쟁을 겪고, 어떤 의미에서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파라노이드나 트라우마가 걸렸을 수 있고. 깨진 거울을 보는 상태로 한국 사회가 왔다. 그 큰 흐름 속에서 사유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입시 교육이 가세를 해서 사유를 못하게 된 상황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학벌 말씀 하셨는데 결국 생존이 중요해 지면서 사유를 한다는 것. 사유가 딴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 계속 자기가 고민부터 문제 풀고, 의논하려고 하고, 소통을 제대로 하려고 하고. 소통을 하면 좋은 해결책이 나온다는 믿음. 소통을 하는 의지와 능력을 거의 키우진 못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칸트가 볼 때 ‘이성의 집’, ‘초감성적 세계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이 지금 우리 속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세월호를 보면서도 연결 시켜내지 못하는 사람이 엄청 많아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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