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 4강 세월호 이후 : 삶은 가능한가

 발제 1_세월호 이후의 삶을 어떻게 마련해 갈 것인가

김순천

크기변환_IMG_7093안녕하세요. 이런 자리에서 10대 여러분과 함께 만나니까 기분이 묘한 것 같아요. 어쨌든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져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시간이 제한돼 있어서 빨리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요. 좀 거칠지만 강의용으로 썼기 때문에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월호 이후의 삶을 어떻게 마련해 갈 것인가’ 첫 번째 유가족의 언어.

“너한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 너보다 어린 윤민이도 세상을 떠났는데… 제가 계속 그렇게 스스로 묻고 답하고 있더라고요. 너도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어.”

2-3반 최윤민 언니 윤아의 이 절규는 우리 모두의 절규이다. 너한테 미래가 있냐고?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 아이도 잘 키울 수 없는 사회였다. 그것을 넘어 나 자신이 과연 생존 가능한 사회인가,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존재가 더 이상 ‘사회적 생존’을 이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엄청나게 불안한 ‘사회적인 공포’가 우리에게 다가오게 한 사건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나는 이제까지 내 영혼과 내 몸은 나의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사회적인 것이었다. 타인의 죽음이 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내 운명을 바꿀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고 어느 때나 불시에 사회적인 문제의 희생양이 되는 몸이었다.

혼란스러웠다. 이제까지 주요 간선도로는 알 수 있었지만 진정한 삶이 이루어지는 복잡한 뒷골목에 대해서는 감지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어떤 사회적인 문제보다 혼란과 고통과 아픔을 한꺼번에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많은 문제를 던져 주었다. 그렇다고 어떤 한 문제도 쉽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정리 될 수도 없고 답도 쉽게 내릴 수도 없다. 그래서 모든 걸 털어놓고 한번 고민을 나누고 싶어서 여기에 왔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고, 우리가 어떻게 사는게 좋은거냐고… 세월호 이후의 삶은 어떻게 만들어 같으면 좋겠냐고.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다른 어떤 사회적인 문제보다 세월호는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워낙 고통스럽고 아파서도 그렇지만 우리 삶의 근본을 뒤흔들어 놓은 사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분이 인터넷으로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신청해서 집에 책이 왔는데 그 책을 보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꼭 껴안아 준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금돌’을 단순히 책이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 말이 나에게 많은 위로를 주었다. 작업하느라 유가족에게만 모든 것을 집중해서 내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책을 그렇게 안아 주었다 하니까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또 어떤 독자는 책을 읽고 나에게 다섯 장에 걸친 긴 편지와 선물을 보내주기도 했다. 자신의 꿈에 어떤 아이가 나왔는데 읽어보니 그 책에 나와 있는 지성이 같다는 것이다. 지성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예쁜 베개를 선물로 주었다. 책이 나오고 전국 50여 지역에서 북 콘서트가 열렸다. 오전 10시 30분에 열린다고 해서 부모님들과 함께 새벽 4시에 차를 타고 광주에 갔는데 대부분 어린자식들을 키우는 젊은 엄마들이었다. 그 분들과 이야기 하면서도 많은 힘을 얻었다. 작은 힘들을 모아가는 이 선한 행위들이 모습들이 정말 좋았다. 그런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서로를 깊게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더 고맙고 감사한다.

세월호 참사가 나고 나에게 유일하게 살아있는 언어는 유가족의 언어였다. 이 유가족의 언어가 세월호 이후의 삶을 재구성하는데 그 기준점과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유가족의 언어를 이야기 하겠습니다.

어떤 한 사건이 갖는 고통의 크기. 우리는 보통 사건이 일어나면 어떤 내용인가,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는가 그리고 잊혀지는데 이제는 그러지 말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월호를 기록하면서. 얼마나 한 사건이 갖는 고통이 크고 깊은가를 정확하게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유가족들이 어떤 사건을 접하고 어떤 식의 고통을 겪었는지, 그거를 그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 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길채원 어머니의 이야긴데요, “불구가 된 것 같아요. 생각하는 것에서도 불구, 판단하는 것에도 불구, 결단하는 것에도 불구,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을 할 수가 없어. 겁이 나서. …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무데로도 나아갈 수가 없어요.”

일본의 정신과 의사 노다 마사아키의 ‘떠나는 길 위에서’라는 책이 있거든요. 그 책을 보면은 큰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반응에 외부 세계에 대한 어떤 판단이나 반응이 마비되고, 관계 형성 장애가 되고, 중요한 활동에 대한 흥미가 현저히 감소하는데 채원이 어머니가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연수 어머니인데, 이 연수 어머니는 다른 부모님들은 광화문이나 이런데 가가지고 활동을 하시거나 분향소에 공방이라고 있거든요, 어머니들이 마련한 곳인데 그곳에서 수도 놓고 여러분들에게 나눠주는 리본도 만들고 그런 일을 해요. 거기도 나오시고 이렇게 하는데 이분은 동네에서만 계시는 분이에요. 어디도 나가지 않고. 그만큼 이분에게는 개인적으로 아이를 잃은 고통이 크다는 의미죠. 그래서 제가 이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름도 밝히지 말라고 그렇게 해서 일단 가명으로 썼습니다.

“오늘도 우울하고 연수(가명) 생각이 나 울었어요. 아직은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아요. 불안하고 초조하고. 신경정신과에 다녀왔어요. 가난한 집에 태어나 잘 해 주지도 못하고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날마다 나에게 피아노 들려줬던 모습들이, 대화했던 모습들이 생각나요. 너무 보고 싶습니다.”

연수어머니는 아직도 416그대로였다. 아직 집밖에 나오지 않는 어머니 중에 한 분이다. 아이가 피아노를 아주 잘 쳤다. 어머니는 아들이 쳤던 이루마의 ‘네 마음속엔 강이 흐른다(river flows in you)’라는 곡을 들려주었다. 마지막 부분은 아이가 직접 편곡하여 이루마가 친 곡보다 더 힘차고 생동감이 넘쳤다. 어머니는 반월공단에 있는 회사에 일하러 갈 때마다 아들이 녹음해준 곡들을 들었다. 아들의 아름다운 연주를 들으면 온갖 힘겨운 일들도 다 잊는다고 했다. 어머니는 말한다. 아들이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고. 아들은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다. 인터넷에서 곡을 다운받아서 그걸로 연습을 했다. “아무리 어려운 곡도 2주만 연습하면 다 칠 수 있어요.” 아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피아노를 사달라고 했다. 그때는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그 말을 그냥 흘려보냈다.

재능이 있는지도 그땐 몰랐어요. 어머니가요. 그래서 고1 올라갈 무렵 아들이 친구 집에서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는 낡은 오르간을 가져온 걸로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얼마나 치고 싶으면….’ 그 소리도 나지 않는 걸 가지고 왔을까.“아무리 돈이 없어도 엄마가 이번에 월급 타면 하나 사줄게.” 아들은 정말 기뻐했다. “엄마, 저희 단원고 교실에 있는 피아노는 삼익그랜드 피아노인데 차가운 소리가 나요. 요즘에는 디지털 피아노도 좋아요. 야마하 피아노 소리가 아름다워요.”

그래서 어머니가 그 피아노를 사줘서 그 곡으로 연습을 했고 날마다 들려줬다고 해요. 근데 이제 갑자기 그 피아노 소리가 끊긴 거잖아요? 상처가 되게 크셨을 거에요.

그 다음에 들려주실 분은 혹시 박예슬이라고 아세요? 그림 잘 그리는 친구잖아요. 그 아버지를 인터뷰 했어요.사실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에도 실으려고 했어요. 근데 너무 이제 많은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슬이 아버님은 안타깝게도 못실었거든요. 아버지를 인터뷰 하면서 얘기했던 거에요. 아버지가 버스 회사 기사에요. 운전기사에요. 그때 말씀 하셨던 건데.

“어제 버스회사를 그만 두었어요. 생계문제도 있고 해서 어떻게든 다녀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다니겠더라고요. 하루에도 수십번씩 예슬이 생각이 나서 운전하다가도 느닷없이 울어요. 손님들 모르게 하려고 선글라스 끼고 운전을 했는데 그 사이로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그러면 장갑 낀 손으로 닦아요. 손님들이 벨을 눌렀는데 그걸 못 듣고 정류장 지나치는 건 한 두번이 아니에요. 벨을 눌렀는데 왜 안 세워주냐고 손님들이 따지면 그 때서야 정신이 돌아오는 거예요. 잠깐만 멍 때리고 있으면 바로 지나쳐 버려요. 시선은 전방을 보고 머릿속은 딴 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아,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하죠. 하지만 어떤 때는 내 잘못인데 죄송합니다란 말도 하기 싫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손님이 화내는 걸 가만히 듣고만 있어요. 미안한 마음은 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 보니) 그런 말이 입 밖에 안 나오는 거에요. 이런 건 사고와 연결되지 않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죠. 한번은 한 300미터쯤에서 신호를 받고 다음 신호등에서 좌회전 우회전 신호를 받아야 되는데 갑자기 내가 어디로 가야 되는지 모르겠는거예요. 어, 내가 지금 어디로 가야 되지? 매일 다니던 길이었는데도 방향을 모르겠더라고요. …그럴 때는 식은땀이 나죠. ”

예슬이 아버님 이야긴데, 제가 여기에 공감을 너무 했어요. 뭐에 공감을 했냐면 매일 다니던 길인데 갑자기 내가 어디로 가야겠는지 모르겠는거 있잖아요. 그게 세월호 사건을 접하면서 제 마음하고 딱 일치가 되는거에요.

그런 세 분을 소개를 했는데, 이 분들 외에도 어떤 다영이 엄마가 있어요, 10반에. 이제 그 분은 저에게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어릴 때 다영이가 있고, 18세 컸을 때 다영이가 있잖아요. 근데 어느 날 꿈을 꾸는데 어릴 때 다영이의 손을 잡고 18세의 다영이를 찾아서 꿈 속을 그렇게 헤맸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계속 고통 가운데 계시는 거죠.

그리고 이제 지연이 어머닌데 그 어머니는 비 오는 날을 너무너무 좋아한 거에요. 그 전에.근데 딸 장례식 한 날이 비오는 날이었기 때문에 이제 비만 오면 너무 딸 방에 가가지고 굉장히 흐느끼신다, 이런 얘기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이제 우리 호성이 어머니는 밤새 내내 물 속에서, 바다 속에서 이제 막 헤매다가, 그러니까 아들의 고통을 대신 겪는 거죠. 헤매다가 숨을 못셔가지고 숨이 가빠서 구급차에 해서 응급실에 실려갔죠. 그리고 이제, 아이들, 형제 자매들, 언니나, 누나나 아이들도 굉장히 여러가지 아픔을 겪고 있어요. 사실 퇴행 증상을 보이는 친구들도 있어요. 갑자기 어린 아이들처럼 행동한다든지, 중학생인데. 그리고 이제 어느 날 집에 가봤더니 목욕탕에 술 먹고 쓰러져서 있는 거라든지. 인생을 자포자기하는 거라든지. 이런 여러가지 모습들이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세월호의 고통이라는 것이 그냥 단선적인 그런 고통이 아닌거죠.

그래서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 그 고통의 범위와 깊이가 훨씬 크고 깊었다. 단순이 304명의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들이 우리 곁에서 수천 개의 크고 작은 사건으로 매일 터지는 것 같았다. 부모에게도, 생존해온 사람들에게도, 그걸 지켜보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도. 이미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의 고통이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은 이 고통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요. 저는 그거를 똑바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그분들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그거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야 거기서부터 문제 해결의 출발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생존 아이들도 제가 인터뷰를 했는데요. 그 아이들도 지금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그 아이들도 여러 차원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이런 얘기를 하는거에요. 진상규명이 안됐잖아요. 그러니까 뭐라 그러냐면은 자기 자신이, 그러니까 친구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만약에 자기가 죽었으면 이유도 모르게 죽었을 것 아니냐. 그러면서 제 앞에서 울더라구요. 그런 경험도 있었구요.

그 다음에 타인에 대한 사랑인데요. 아,제가…이분들을 만나면서, 제일 깊게 느꼈던 지점이에요. 이거는. 인간의 고통이 가져다주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은 그런 거 같아요.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 내 인생은 끝나버렸다는 걸 알았어요.”

2-10반 김다영 엄마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다영이 아버지는 다영이가 세상을 뜬 이후로 삶의 재미가 없어졌다. tv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한 역사적인 인물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재미도 사라졌고 영화보고 피자를 먹던 일상도 전부 사라져 버렸다. 홈플러스에 과일 사러갔다가 과일 좋아하던 다영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냥 빈손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는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공허가 몰려왔다.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다영이가 곁에 없다는 것을 현실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삶을 나누는 시간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또 건우 엄마는 “우리 가족은 건우만 잃은 게 아니에요. 건우가 꾸릴 미래의 가족 모두를 잃은 거잖아요. 우리 딸이 늘 그랬어요. 엄마, 나는 건우를 다른 여자한테 못 줄 것 같아. 네 아들도 아닌데 왜 너가 난리야. 건우를 두고 정말 별별 이야기를 하면서 꿈꾸고 살았어요.” 그렇게 일상적으로 삶을 나누던 아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버린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런 부모들에게서 사랑을 배웠다. 이 일상적이면서도 뿌리처럼 단단한 사랑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순 한가운데서 싸우고 있는 부모님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처럼 사회적인 문제로 아픈 사람에게로 그 사랑이 번지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큰 애에 대한 슬픔이 너무 커서 분향소에서도 큰 애 밖에 안보였어요. 다른 아이들은 볼 엄두가 안나는 거예요. … 어느 날 기도하는데 갑자기 내 아들 뿐만이 아니라 삼백명 넘는 다른 영혼들도 느껴지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겠구나. 그날 밤에 꿈을 꿨어요. 여러사람들이 즐거운 모습으로 단체 사진을 찍는 꿈이었어요.” 2-8반 제훈이 엄마는 제훈이의 사랑이 300여명의 희생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번지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랑은 같은 희생자들을 넘어 사회적인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에 대한 깊은 공감으로 확산되었다.

“이 일을 겪고나서 남의 일을 되돌아보게 된 것 같아요. 밀양이든 쌍용자동차든 사회문제가 됐던 것들. 나는 그들의 외침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사건의 한가운데 있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남들도 똑 같이 그랬구나 싶어요.” 채원이 어머니.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이 실은 자신의 것이었다는 이 통렬한 깨달음은 부모들의 자신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성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깨달음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거든요.

박수현 어머니의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제가 1년 동안 느낀 것은 이 사회에 진정한 어른들이 많지 않다는 거였어요. 저도 우리 수현이, 내 가정만 챙겼던 거죠. 제가 나이만 먹은 어른이지 진정한 어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이를 잃고 나서야 사회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됐어요.

이렇게 생각하게 되기까지 정말 힘들었어요. 이렇게 활동하면서 알게 된 게, ‘내가 이 시대에 살아가면서 진짜 시민으로서 행동한 적은 없었구나’, ‘잘못된 일에 대해서 침묵하고 비겁하게 산 대가가 정말 혹독하게 왔구나’ 이런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젊은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요. 이런 사회를 물려주면서, 그들에게 싸워 달라고 하는 자체가 어른으로서 철면피 같고요. 그래서 대학 간담회에 가면 얘기해요. 나처럼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말라고.”

그러면서 박수현이 어머니는 학교선생들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정치가 나쁜 게 아니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활동이라는 걸 가르쳐 주세요. 저는 정치가 나쁜건 줄 알고 관심 없이 살았어요. 그런데 이런 일을 겪어 보니까, 모든 걸 법으로 해결해야 하더라고요. 처벌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은데 법으로 입법이 안 돼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입법하는 사람이 정치인들이잖아요. 정치적인 발언을 하라는 게 아니고, 아이들에게 정치가 무엇이고 어디서 그런 걸 알 수 있는지 말해 달라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알 권리’를 가르쳐 주세요. 저는 언론이 조작되는 걸 본 사람이에요. 언론인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언론이 제대로 기능했다면 국민들이 이렇게 방관하지 않았을 거 같아요. 저는 공중파 말고 <뉴스타파> 같은 대안 언론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 그런 거 들으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공중파에서 말하지 못하는 진실을 말하는 곳이 있다는 걸 알려 주면, 아이들이 진실을 알 기회가 많아지지 않을까요.”

이렇게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가정주부에서 부모님들이 세상과 부딪히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다음에 이제 마지막 장인데요. 순전한 정서적인 연대와 사회적인 실천입니다. 어떤 민간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애도가 진행되었거든요? 민간 차원에서는 제가 이제 안산에 살기 때문에 아이들을 구조해줬던 섬에 동거차도 서거차도 조도라는 섬에 어부들이 있어요. 그분들이 조도에 사는 어부들이 한 100여 명이 함께 와서 분향소에 분향도 하고 생존 아이들이 자기가 살려줬던 생존 아이들도 만나고 이렇게 같이 마음을 함께 나누고 광화문에서 시민들과 함께 하고 이런 민간 차원에서의 애도는 됐는데, 지금 현재 국가적 차원의 애도는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걸로 부모들이 커다란 고통을 겪고 있고. 사실 저도 부모들이 고통스러운 만큼 옆에서 기록하는 저희들도 사실은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떤 한 인간이 변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를 계속 반복하여 일으키듯이 사회도 마찬가지다. 인간에도 유형이 있듯이 사회에도 유형이 있어 사회적인 모든 문제는 그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끊임없이 반복된다. 아마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또 다른 형태의, 그러나 더 강력한 형태의 사건들이 모양을 바꾸어 사회가 다 파괴되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아이들 250명을 비롯하여 304명이 희생이 되면 세상이 조금은 사회가 바뀔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호는 노동문제의 패턴을 그대로 따라갔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했다가 해결되지 않고 고착화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이건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사고- 구출 못함- 거짓보도들- 분노- 투쟁(서명작업과 단식, 도보행진, 직접적인 싸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음-고립- 언론과 정치권과 보수 세력의 공격-엄청난 좌절, 절망-가족 내부로 돌려지는 문제들, 서로에 대한 공격과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감정들이 극단화되고 왜곡됨- 다시 외부로 향하면서 봉합됨, 자신들을 무시한 정부에 대한 수치심과 모멸감.

이런 형태의 사회시스템이라면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이런 패턴을 따라 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부모들은 자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진상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1년 동안 그들도 힘이 들고 지쳐 있다.

이거는 창현이 어머니 이야기인데요. “지난해 우리가 열심히 싸울 수 있었던 건 그렇게 하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부모이기 때문이고, 또한 이 부모들을 모욕하는 정부의 무례함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상처는 깊어지는데 진실은 묻혀가고 아무리 소리 질러도 들어주는 사람은 소수다. 점점 비난하는 일에 익숙해지고 영혼마저 피폐해지는 것 같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정말 어찌하면 좋을까. 하나님 다 보고 계시죠?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지옥을 헤매고 있습니다. 이 지옥에서 건져주세요. 빨리 건져주세요.”

어떤 식으로든 부모들이 중심에 서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추동체가 되겠지만 그 분들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지점에 놓여 있다. 여기에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다. 이제 이거는 한 시민의 이야긴데요, “세월호 겪어오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참 많지가 않구나. 그리고 내가 어떤 일을 해 낼 수 있는 부분도 굉장히 제한적이구나. 그렇지만 우리가 함께 하면 그래도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목표는 이룰 수 있겠다. 같이 함께 해 나가면 큰 뜻을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원봉사 이성태 전남자원봉사센터 장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이제 앞에서 저는 이제 글 만을 썼어요. 물론 광화문도 가고 이렇게 이렇게 했지만. 연대작업이 아니라. 책을 내고 북콘서트를 하면서 시민들과 만나가는 작업들을 했거든요. 그리고 부모님들과 짝을 지어서 북콘서트를 갔어요. 그러면서 제가 그 시민들과 내 안에 있었던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던 불신, 냉소가 녹아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동안 사회적 문제를 많이 기록을 했다고 하지만은, 그렇지만은, 내 안에는 온전하게 많은 사람들과 기꺼이 마음을 나눈 것이 있지 않았던 어떤 지점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근데 이번에 세월호에서는 그런 것들이 진짜 녹아내리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그래서 표현한게 어떤 ‘순전한 정서적인 연대’를 하지 않으면 사회적인 연대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열의, 열망이라고 봐야 하는데, 우리 내부에서도,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가, 인간을 우리는 믿는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한 그런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고 나는 그렇게 이제까지 그냥 가장을 한 것은 아닌가, 온전하게, 정말 순수한 형태의 연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교류하는 그런 경험도 사실은 몇 번에 걸쳐서 했구요. 그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소중했던 것 같아요.

내 안의 냉소, 불신, 연대하지 못한 마음, 혼자 뭔가를 다 해 보겠다는 오만, 작은 오해, 그 모든 것들을 녹여내고 내면적인 순결한 연결, 사회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로 당신도 아팠고 나도 아팠고 우리도 아팠던 것이다.

스웨덴에서 아주 큰 사고가 났을 때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위로하려 하지 말고 위로가 되라.’ 국내만이 아니라 프랑스, 미국, 독일까지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고통을 함께 해 주었다.

이런 순전한 정서적인 연대가 있어야지 그게 사회적인 연대로 이어지고 사회적 연대가 사회적인 실천으로 성장해 간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에 부모님들을 만나보면 조금 과감해졌어요. 뭐라 그러냐면, 이제는, 그냥 말만 함께한다 하지 말고 실천으로 보여주세요. 이렇게 말씀을 하세요. 좀 많이 과감해 지셨어요. 근데 우리의 어떤 지점을 건드리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도 함께 해야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그 실천은 꼭 무슨 광화문에 나가서 함께 하는 이런 작업만은 아니겠죠? 여러분도 다 아실 거라도 생각해요. 그래서 사회적인 실천으로 성장해 간다.

이번에 고립되었던 유가족들을 시민들이 구조한 거 아시죠? 광화문에서. 그렇게 했을 때 찬호 아빠가 이런 얘기 했습니다.”감사합니다. 미안하고 죄송스럽습니다. 저 안에서 여러분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마신 캡사이신, 공권력의 물대포 저는 그 중 캡사이신만 먹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한민국 역사 상 두 번째로, 깡패 같은 공권력 바리케이드를 넘었습니다. 2008년 이후 두 번째라고 합니다. 두드리면, 우리가 계속 요구하면 우리가 원하는 답변이 나올 겁니다. 국민과 함께 안전한 사회 인간 존엄의 사회를 위해 행동을 강행해 나갈 겁니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당신들을 구해준 시민들에게.

네 발제를 마치겠습니다.

 

발제 2_끝까지 희망에 책임지는 세대

인디고 연구소 이윤영

 

크기변환_IMG_7115

저는 부산 인디고 서원에서 온 이윤영이라고 합니다. 앉아서 진행하겠습니다.

방금 보신 영상은 저희가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라는 이름으로 작년 8월에 ‘인디고 유스북페어’라는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라는 책이 동일한 이름으로 있구요,제가 그 편집자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고. 저는 김순천 선생님과 같이 유가족 분들과 직접 대화를 하거나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과 함께 하지는 않지만 부산이라는 지역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활동을 하고 있구요.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라는 방금 티저 영상은 두 시간짜리 풀 다큐멘터리 영상입니다. 근데 지금은 인트로아웃트로를 짤라서 보여드린거구요. 제가 오늘 짧게 말씀 드리고 토론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영상에서 이미 다 보셨겠지만 저희가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세월호 참사 때문에 만들게 된 건 아닙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대지진이 있었던 그날 이 주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다 목격 하셨잖아요? 3월 11일날 대지진이 일어났고 핵발전소가 붕괴 되었구요. 그때 눈으로 목격한 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그 누구도, 세계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여겨진 핵발전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으로 붕괴가 되었고 그 누구도, 세계의 그 누구도 아무도 구원해주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그 모습을 봤을 때, 과연 기성세대가 만들고자 했던, 기성세대라고 하면 그 세대를 만든, 기성의 가치관이 만들어낸 핵발전소라고 하는, 석유가 고갈될 것이고, 에너지가 필요하고, 더 많은 전기를 가동시켜야 했기 때문에 만들어낸 새로운 기술이라고 불리던 것이 붕괴되었을 때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면 이것은 단호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어야 했다라는 판단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라는 이름은 그런 가치들을 내가 지금 당장은 눈에 띄는 이익을 얻을지언정 마지막까지 책임을 질 수 없다면 단호하게 그 방법을 그만두고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하는 새로운 세대가 되어야 한다고 하여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2011년도부터 이 주제를 계속 공부를 해 왔는데요.

공교롭게도 2014년 4월 16일에 아주 유사한 형태로 세월호 참사라고 하는 형태로 드러나게 된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세월호의 배는 출항하면 안 되는 배였고, 이 런 참사가 일어났을 때 긴급 구조가 안 되는 구조였던거죠. 생명보다는 돈이 우선시 될 수 없어야 했는데 그런 사회였기 때문에 우리가 과연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탄생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작년에 이런 다큐멘터리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청소년들이 이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난 뒤에,여러분들도 아마 여기 계시는 분들 청소년들이 꽤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를 아주 유사한 형태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들이 느끼는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컸습니다. 유사한 시기에 진짜로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를 타고 다녀온 아이들도 있었구요, 다녀갈 예정이었던 친구들도 있었기에. 그 당시에 수학여행이 취소된다 안된다 그런 문제를 떠나서 이것은 그냥 나의 문제, 그런 어떤 것이었죠. 그래서 저희도 아이들이 정말 비판에 빠져있는 순간들을 마주했었는데, 하나의 사건이 터집니다. 사건이라기 보다는, 저희가 나중에 사건이라고 명명했는데요, 한 아이가, 세월호 다음날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국어 시간이었구요. 국어 시간에 김선우 시인의 시 ‘단단한 고요’라고 하는 시가 있습니다. 도토리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시입니다. 도토리묵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겠습니까? 그런데 시 구절 중에, 그런 구절이 있었어요.

물 속에 가라앉으며 안녕 안녕 가벼운 것들에게 이별인사 하는

그러니까 도토리들이, 서로 손을 잡고, 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묘사하는 구절이었습니다. 근데 그게 세월호 참사 직후였기 때문에 그 구절이 마치 작은 것들이 물 속으로 손잡고 가라앉는 느낌인 거죠? 그 시를 읽으시면서 국어 선생님이 눈물을 터트리신 겁니다. 참을 수 없어서. 그리고 그 순간에, 교실에 있었던 아이들은 진정한 문학 수업을 한거라고 생각해요. 공감하는 능력이 문학의 가장 뛰어난 역할이라고 한다면. 근데 때마침,아 주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그 순간을 지나가시던 교장선생님이 그 선생님을 불러내서, 눈물을 닦고, 아이들을 동요시키지 말고, 수업을 진행하라, 라고 하는 명령을 내린거죠. 그래서 그 선생님은 눈물을 닦고, 그 시를 읽지 않고, 다른 시로, 넘어가서 수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목격한 아이들은 그것 자체가 이제 또 상처인 겁니다. 충분히 슬퍼하지도, 애도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 죽었지만, 여전히 학교는, 너희 아직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외치는 이 학교 사회에서, 애도조차 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도 보게 되면서, 그 상처를 복합적으로, 그러면서도 그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본인도 너무나 슬픈, 현실인겁니다.

그런 아이들이 계속해서 느끼는 바는 뭐였나면, 수학여행도 취소돼, 예능도 취소돼, 축제도 취소돼, 모든 것이 다 취소돼서, 처음에는 그게 정말 애도하는 마음이었는데, 그런 자기 모순들과 겹쳐지면서 나중에는 무기력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무기력해지고, 피곤해진다고 본인 스스로 표현을 합니다. 그런 순간에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무기력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에 대해서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요.

그러면서 나온 것이, 저희는, 우리가, 윤리적 기준을 새롭게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그 이야기는 뭐냐면, 저희가 슬로베니아 학자 슬라보예지젝이라는 사람을 인터뷰 했었는데요, 그 슬라보예지젝이라는 사람 인터뷰 중에는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여러분 식당에 가시면, ‘바닥에 침 뱉지 마시오’라고 하는 표어가 붙어있지는 않죠.그죠?그렇게 하지 않아도 침을 뱉지 않으니깐요. 그런데 중국에 가면 거의 모든 식당에 그 표어가 붙어있는 겁니다. 너무 침을 많이 뱉기 때문에. 그것이 윤리적, 아주 사소한 윤리적 기준이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 그러니까, 선진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사회의 윤리적 기준은 아주 높아서,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예를 들면 세월호 참사를 예를 들면, ‘생명보다 돈이 중요하면 안됩니다’는 구절을 법제화하지 않아도, 그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지켜지는 사회, 그런 윤리적 기준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단순히 땅에 침을 뱉지 마시오 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 정도의 윤리적 수준 까지는 끌어올려야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건 2010년도에 저희가 인터뷰를 했었던 이야긴데.

근데, 우리 사회를 돌아보니, 윤리적 수준이 바닥인거죠. 여러분 화장실에 가시면 가장 많이 보는 그 스티커가 뭡니까? 남자분들은 잘 못보시죠. 여자분들은 앉으면 다 보이니까. ‘휴지는 휴지통에’. 서울대학교 가도 붙어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부를 잘한다고 하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모인 화장실에 가도, 휴지는 제발 휴지통에 버려주세요, 뭐, 떠난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이 진정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지하철 타실 때, 버스 타실 때, 모두 하차한 후 승차하시고, 진동벨로 바꿔주시고, 뭐 떠나실 때 남겨진 물건이 없는지 다시 살펴보시고, 그런 안내방송 들으신 적 있을 겁니다. 그런 요청을 받는 것이 굉장히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내가 그런 정도의 인간이 안 된다고 하는 윤리적 기준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과연, 세월호를 출항시키지 않을 수 있는 윤리적 기준을 갖추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새로운 세대라고 했을 때, 새로운 윤리적 기준을 가진 세대가 되지 않으면, 이것은 절대로 극복될 수 없는 문제이고, 늘 경제논리에 질 것이고,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가치들에 매몰될 것이라고 하는 굉장히 삶을, 생명을 건, 시급한 문제들이 떠오르게 되는거죠.

그러면, 새로운 윤리적 기준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되느냐, 라는 얘기를 하면서 저희가 생각하게 된 건, 공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보통 현대 사회가, 사생활 침해가 문제가 된다고 많이 얘기 합니다. 프라이버시가. 그죠?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근데 거꾸로 많은 사회학자들은 공적인 생활이 침해 당한 사회로 표현합니다. 모든 것이 사적인 것으로 치환되고 개인주의화 되어서 파편화되어서 공적인 삶이 부재하는 바람에 우리 삶을 관통하는 공적인 것들은 굉장히 우리의 선택에서 멀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들 교육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대안교육을 받는 이유. 혹은 공교육에서 공적인 교육을 받는 것을 포기한 이유들은 그런 것들에 있습니다. 우리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러가지 정책들이 있는데 그 정책들을 선택할 권리는 학생들에게 있지 않고, 또는 뭐 기타 여러가지 다 그렇죠. 한미 FTA가 채결될 때 조차도 FTA가 채결되는 것은 국민 98%가 채결되는지 조차도 몰랐다고 하는데 누가 알아서 누가 선택을 하는 건지, 하지만 FTA가 채결되고 난 뒤에 모든 삶들에 모든 정책들은 우리 국민 모두의 삶을 관통하죠. 그건 투표권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고, 이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든 이들의 삶에 관통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공적인 담론의 장을 잃어버렸나, 누구에게 빼앗겼나 라고 하는 이야기들을 아이들이 하기 시작하게 된 겁니다. 이것을 되찾아야만 우리가 빠져있는 무기력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주구장창 비정한 정부와 많은 자본에 바위에 계란치기 격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에게 필요하고 좌절로 오고, 그래서 좋은 삶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갖고 있지 않고,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좋은 삶에 대한 정치, 그러니까 좋은 삶에 대한 방향성을 정치라고 한다면, 그런 정치적인 생각, 사유를 하지 않는 사람만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권력과 정치 사이에 있는 분리, 공백이 우리 삶을 더욱 더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아이들 스스로가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론에 대한 이야기들, 야, 우리 스스로가 이러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는데, 이게 어떻게 해서 이러한 일들이 펼쳐졌을까, 이런 선택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이번에 무상급식,경 남에서 한다는데, 이것이 어떤 영향력으로 우리에게 미칠 것인가, 기타 등등 이런 것들을 아이들이 이야기 할 수 있는, 방금, 수현이 어머니께서 딱 그 이야기 하셨다고 김순천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셨지 않습니까? 정치라고 하는 것이, 정당 싸움이 아닌데, 우리는 이미 그런 것들로 이미지화 되어서, 멀리하게 되었지만, 실제 정치라고 하는 것은 우리 삶 모든 것을 얘기 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정치적인 것이 된다는 것은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윤리적 기준을 공고히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죠.

그래서 저희가 끝끝내 도달하려고 하는 바는 다른 게 아니라 그런 부분입니다. “윤리의 정치화”라고 하는 굉장히 어려운 말이 있는데요.우리는 보통 정치인들이 윤리적이기를 많이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스캔들 난 거나 이런 것들도 마찬가지죠. 총리가 누가 되느냐,윤리적 잣대를 막 갖다 대기 시작합니다.물론 그것이 무시되긴 합니다만, 그렇죠. 재산이 얼마고. 어쩌고 저쩌고. 결혼관계가 어떻고 저떻고. 그런 윤리적 잣대들을 굉장히 많이 요청을 하지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그런 정치인들 개개인이 윤리적인 것은 당연한 것이고, 윤리가 법제화 되고,윤리가 정치 그 자체였을 때, 우리 사회가 좀 더 좋아질 수 있다,이걸 좀 더 쉽게 하자면, 1964년도에 출간된, 우리나라 월간진데요, <인물계>라는 잡지가 있었습니다. 거기 서문에 보면 이런 말이 있었어요. “언론이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다 할 때, 피치자, 즉 국민이라고 하는 사람은 결코 고독하지 않다. 국민에게 뜻을 발표할 입이 있고, 막힌 가슴을 대변할 양심의 소리가 있을 때,독재자도 결코 부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악한 독재자 조차도 민주주의가 살아 있을 때 민주적 정치가 살아 있을 때는 이 사람도 부패할 수 없는 거죠. 악한 사람이 오더라도 절대 부패할 수 없고 옳은 삶을 지향할 수 있는 그런 정치가 될 때, 그런 사회 기준이 만들어질 때, 땅에 침 뱉는 것이 너무 미친 짓이 될 때, 저 사람 뱉으면 저 사람 뭐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때 우리 사회가 달라질 수 있다라는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가 그래서 이번에 <인디고잉>이라고 하는 잡지를 저희가 내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국내 유일의 잡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꼭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청소년들이 끊임없이 본인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구요, 그 목소리를 읽어주셔야만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말할 수 없는 자들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최근에 2015년도 봄 호에 그런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가난한 사회, 그리고 고귀한 삶’.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 너무 풍요하지만 실제로 너무나 가난한 사회이다, 세월호도 인양하지 못했고, 유가족분들에게 당연히 해야할 보상들도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그리고 모든 것을 물질적인 것들로 치환하는, 그러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굉장히 가난한 사회, 여전히 경제적인 성장만을 요청하는, 너무나 빈곤한 사회 인데,거기서 고귀한 삶을 살기란 굉장히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은 경제 성장, 경제 부흥, 경제 혁신 이런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재화를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과 잘 나눠서 행복하게 살 것인가, 고귀한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공적인 대화를 나눠야 하는가, 시민이 되어야 하는가,란 얘기들을 나눠야 한다는 얘기들을 했구요, 그 동시에 독일 학자 카를야스퍼스라고 하는 사람이 최근에 책을 냈는데 그것에서 발췌한 건데요. 그런 얘기를 합니다.

나치 치하에서, 내가 아무리 저항을 하고, 그래서 감옥에 투옥되어서, 고통을 받았다고 할지언정, 그 사람은 정치적인 책임을 다 지지 않았다. 심정적인 책임은 다 졌으나,그 사람이 저항하는 것 자체가 내가 그렇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심정적인 책임은 이미 다 졌으나,정치적으로, 즉 다시 말해서 결과적으로는 나치가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정권을 만들어낸 그 정치적 책임에서는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사람은 그 국가를 지배하는 논리, 지배하는 정책의 모든 것에 책임이 있고, 그것에 내가 수긍하든 수긍하지 않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정치적 책임이다 라는 얘기를 합니다.

저희는 그런 정치적 책임, 결과적으로 책임을 요청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구요. 그래야만 이제 그만 해야 되지 않겠어, 이제 좀 잊어버려야 되지 않겠어 라는 심정적 윤리에만 기대는 그런 말들에 지지 않고 끝까지 서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제가 내려가면 될 것 같은데요.어, 본 회퍼라고 하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디트리히 본 회퍼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감옥에서 쓴 편지에 보면은. “끝까지 서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라는 말을 얘기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도 인디고 서원에서 청소년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끝까지 정의의, 혹은 희망의 편에 서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방금 얘기한 정치와 권력의 분리를 막는 것, 그리고 시민이 되는 것,그리고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 그것 만이 세월호 참사에서 죽은 이들, 그리고 앞으로는 세월호 참사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게 할 많은 것들을 대비할 수 있는,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이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구요, 그를 위해서 이것은 인디고 서원 만의 힘으로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 분들이 그런 작업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김순천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말씀해주셨던 그런 연대들을 어떻게 앞으로 잘 해 나갈 것인가에 몫을 청년들, 젊은이들이 기꺼이 질 수 있는, 그래야 그런 청년이 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많은 소통을 했으면 좋겠구요. 책으로도 많이 내고 있으니까 많이 읽어주시고, 피드백도 주시면 그런 연대들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발제는 여기까지구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기변환_IMG_7176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