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말]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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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가을의 전설>(1994)이 있습니다. 원제가 ‘Legends of Fall’인데, 몰락이라는 뜻을 지닌 ‘Fall’을 가을로 오역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던 작품이죠. 대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삼형제가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육체와 영혼이 무너져가는 스토리로, ‘순수의 몰락’이 그 영화의 테마입니다. ‘Fall’도 바로 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도입부에 이런 나레이션이 나옵니다. “내면의 목소리를 명료하게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 목소리를 따르며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은 미쳐버리거나 혹은 전설이 된다”

제 정신을 갖고 살아가기가 점점 어렵게 느껴집니다. 버티어 보려고 몸부림치지만 현실의 암울한 무게에 곧 짓눌리고 맙니다. 삶은 지속될 수 있을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전환과 연대’라는 주제로 서울청소년창의서밋을 하자센터가 개최했습니다. 이번 서밋에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가진 여러 분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덴마크, 홍콩, 후쿠시마, 밀양 등 여러 현장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분들이 초대되었고, 공교육과 대안교육 교사들이 한 자리에서 비진학 청소년과 마을교육 등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여러 경계들을 넘어서 ‘창의적인 공공 지대(creative commons)’를 만들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여섯 번째를 맞는 이번 서밋은 <어울림 축제>, <재난사회의 교육>, <쉼표가 있는 교육>이라는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그 안에 개막식, 워크숍, 포럼, 대담, 강연, 사람책, 달시장 등의 프로그램을 담았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 창의성을 논하고 축제를 벌인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광범위하게 드리우는 위험사회와 만성화되는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긴 호흡과 넓은 시야가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경험들로 생활세계를 함께 빚어가는 친구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일과 놀이와 공부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면서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마당이 곳곳에 생겨나야 합니다.

이번 서밋은 그런 도전과 실험을 해나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상상력을 풍성하게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공감과 신뢰와 존중을 기반으로 한 ‘느슨한 연대’ 속에서 보람 있는 일거리들을 찾고, 공통의 과제를 위해 행동하면서 희망을 구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용기도 얻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조망하며 지금 이 자리를 통찰하는 관점과 개념들을 배웠고, 학교 시스템에서 적정 기술에 이르기까지 대안적인 생활양식을 탐색해가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진지하게 참여해서 생각을 나누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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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에서 <이야기꾼의 책공연>이라는 사회적 기업이 마련한 공연이 있었습니다. ‘봉우리’라는 노래를 가지고 우리 삶의 자화상과 꿈을 몸짓으로 표현한 작품이었죠. 가사의 일부를 다시 음미해봅니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곤 생각질 않았어 (…)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에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작은 고갯마루를 최고의 봉우리라고 착각하고 악착같이 기어오르는 모습이 지금 많은 사람들의 삶인 듯합니다. 그러나 지금 서 있는 바로 이곳이 봉우리가 될 수 있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흥미롭게도 ‘서밋(summit)’에는 ‘봉우리’라는 뜻도 있습니다. ‘정상(頂上) 회담’ 같은 추상적인 용법으로 많이 쓰이긴 하지만요. 창의서밋은 어떤 ‘정상’을 의미할까요. 주최자인 저희 하자센터는 최고의 창의적 에너지가 모아지고 뛰어난 아이디어가 연결되며 시너지를 일으키는 허브를 꿈꿔왔습니다. 그러나 창의서밋이 추구하는 높이는 외형적인 위세가 아닙니다. 각자 선 자리에서 존재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공동의 삶을 다채롭게 창조해가는 탁월함을 우리는 지향합니다. 하자센터가 최선을 다해 마련하는 행사지만, 매번 그 실속을 채워주시는 것은 참가자들의 기운과 정성입니다. 준비가 많이 허술했는데도 알차게 진행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서밋을 통해 나눠가진 창의의 씨앗을 저마다의 현장에서 뿌려 가꿔가는 모습이 기대됩니다. 거기에서 뻗어나온 뿌리나 싹 또는 줄기나 열매를 내년도 서밋에서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김찬호(알로하, 하자센터 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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