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 칼럼 <언론매체의 협동조합 실험>

경향신문 5월 8일자 [경제와 세상]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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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이 지난 5월3일 기존의 주식회사 형태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21세기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현실 속에서 언론 매체의 진화와 적응에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며 또 현재 한국사회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협동조합 운동에도 중요한 대목으로서 주목해야 할 일이다. 

 

화폐 경제의 특징은 몰인격성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가지각색의 생산 및 소비 활동을 기막히게 효율적으로 조직해 주는 화폐 경제의 괴력은 바로 이 몰인격성에서 나온다. 스마트폰이 만들어져 소비되는 과정을 한번 생각해보라. 지구 전체에 걸쳐 모름지기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공장에서 디자인 사무실에서 힘을 합쳐 수십억에 달하는 이들의 주머니에 이렇게 앙증맞은 물건을 꽂아 넣어주는 이 기적은, 내가 상대하는 인간이 어떤 사람인가를 묻지 않고 오로지 돈으로 내 이익과 손해는 얼마라는 단순한 신호 하나로 사람들을 조직해주는 화폐 경제의 몰인격성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는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노동 분업과 자본 투자가 필요한 경제 활동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가 가진 욕구와 능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서로에 대한 인간적 신뢰로 만날 때 훨씬 만족스럽게 충족되는 것들도 똑같이 많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화폐 경제의 몰인격성이 큰 감점 요인이 된다. 내 아이를 온종일 맡아 줄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라. 매일의 밥상에 건강한 유기농 식자재를 가져다 줄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라. 공장 규모로 운영되는 기업형 어린이집이나 대형 마트 같은 조직이 무슨 매력과 장점을 갖는가. 매일 만나는 옆집 부모와 함께 공동 육아 조합을 결성하고, 농촌과 어촌 현장에서 정직하게 구슬땀을 흘리는 분들과 생협을 결성하는 편이 훨씬 만족스럽다. 이러한 인격적 관계의 신뢰에 바탕하여 서로의 욕구와 능력을 살려간다는 경제 활동이야말로 협동조합이 번성할 수 있는 토양이다. 

 

정보와 생각을 제공하는 언론 매체의 형태는 어떨까. CNN과 BBC를 보면 대자본과 대규모 조직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과문해서인지 모르지만, 협동조합 형태의 언론 매체는 ‘프레시안’이 처음인가 한다. AP통신의 경우가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보 공유를 위한 매체들끼리의 네트워크이지 최종 소비자인 독자들과의 협동조합은 아니다.

 

협동조합 언론 매체의 실험은 단순히 돈을 더 내줄 후원회원을 찾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보란 특정 상황에 처한 특정한 사람들의 인식 관심에서 나오는 산물이다. 정보 소비자가 ‘몰인격적’ 익명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 기업형 매체의 경우는 그래서 정보의 선별과 조직이 그 기업 조직 뒤에 도사리고 있는 자본과 권력의 손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의 이번 변신이 새로운 언론 매체의 진화라는 실험의 의미를 가지려면, 출자금과 조합비를 낸 만큼 자신이 알고 싶은 정보와 자신이 깨우치고 싶은 지식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능동적인 독자, 그리고 편집진과 기자들의 역량과 양심에 신뢰를 가지고 그들의 성과를 냉철히 평가하면서 또 어려움을 함께 짊어질 책임 있는 공동체 성원을 찾아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 돼야 한다.

 

이는 힘차게 진행되고 있는 협동조합의 실험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화폐 경제가 만족스럽게 해결해 줄 수 없는 사회적 욕구를 생산자 소비자 사이의 신뢰와 관심과 협력으로 풀어낸다는 그 본령의 정신으로 볼 때 ‘사회적 정보의 공동 구매’라는 영역이야말로 적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분야가 아닐 수 없지만, 그럼에도 세계 어디에서도 아직 실험되지 않았던 영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협동조합 ‘프레시안’이 질적 양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두는가는 시장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은 오늘날 협동조합의 조직 방식이 과연 어느만큼의 확장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지의 시금석이기도 하다. ‘프레시안’의 실험을 흥미롭게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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