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좌담회 <힐링과 멘토의 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 관련기사와 발췌록

아래는 전남도민일보의 기사입니다.

녹색평론 좌담회에서 오간 내용을 좀더 자세히 ‘웹에서’ 읽고 싶으시면

 http://www.jk.ne.kr/bbs/board.php?bo_table=mun&wr_id=321로 가보세요.

상당히 많은 분량의 발췌록이 있습니다.

(한신대 김영민교수의 홈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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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때론 긍정도 독이 된다
좌담 : 힐링과 멘토의 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

2013년 04월 05일 (금) 고동우 기자 kdwoo@idomin.com

 

 

녹색평론

 

언젠가부터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힐링과 멘토(찾기)는 최근 한국인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사람들은 왜 가까운 가족, 친구, 동료들보다는 뭔가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는 ‘멘토’를 너도 나도 찾고 있고, 또 그들로부터 ‘힐링'(치유)의 비법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 또한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어떤 특징을 말해주는 것일까? 최근 발간된 격월간지 <녹색평론> 3·4월호는 관련 전문가를 초청해 ‘힐링과 멘토 시대’의 함의를 분석하는 좌담을 진행했다. 그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힐링과 멘토 현상의 근원으로 떠올려볼 수 있는 것은 역시 ‘불안’이다. 현재 자기 삶에 대한 불안,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 소위 멘토들은 “자기 안에 불안한 심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불안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는다”(법륜 스님) 같은 말로 불안해 하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다.

 

물론 <녹색평론> 좌담회 사회를 맡은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사회학)의 진단처럼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의 삶은 불안했”다. 다만 “압축성장을 하다가 갑자기 저성장에 접어든 한국은 그 질곡이 훨씬 무거”워졌을 뿐이다.

 

예의 과거에도 멘토 역할을 하는 존재와 힐링을 전파하는 유사한 활동들이 있었다. 전자는 가족이나 동네 형·언니, 학교·직장의 선배를 예로 들 수 있고, 후자는 주로 교회 같은 종교단체가 주관한 집단상담, 부흥회, 소그룹 활동 등이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화평론가 정윤수 씨가 지적하듯 다양한 이유로 우리 일상이 ‘파편화’ ‘원자화’되면서 이전 관계망은 크게 줄어들었고, 교회 등이 주도한 힐링의 방식도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며 상대적으로 효용성을 잃게 되었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 연구실장은 “네 잘못이다”로 대표되는 교회 죄 담론의 시대적 한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회 죄 담론은 죄를 지었다는 느낌을 사람들이 바닥까지 체험하게 한 뒤에 또 그것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느낌을 가시적으로 보여줘 치유를 했는데, 최근의 힐링 담론은 ‘괜찮아’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죄의식이 아닌 자기긍정의 욕망을 포함하고 있다.”

 

정윤수 씨와 김진호 연구실장은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 소비문화의 확산이 있다고 주장한다. 힐링과 멘토를 찾는 현 세대는 자동차와 외식, 컬러 TV와 다양한 대중문화를 비롯해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눈부신 디지털문화를 체험한 ‘최초의 세대’이다. 자연히 이들은 과거에 비해 의무보다는 다채로운 개인적 욕망을 자각하고 긍정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다.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건 왠지 달갑지 않다. 욕망의 실현을 가로막는 각종 현실의 장애를 꼬집어주며 “당신은 괜찮아”라고 위로해주는 목소리가 더 듣기 편하고 절실하다.

 

자기긍정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며, 분명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삶 자체가 너무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어서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김찬호).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너무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이를테면 정윤수 씨는 “세상과 진정한 연대를 꾀하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면서, 그것마저 일회적 이벤트로 감상적인 만족에 그침으로써 결국 ‘자기 자신’으로 귀결되어, 관계를 복원하고 내면을 회복할 가능성으로부터 더욱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지나친 긍정주의는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상황”을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자기 뜻대로, 원하는 대로 세상이 움직일 리 없기 때문이다. 김진호 연구실장의 말이다.

 

“(오히려) 자기긍정으로부터 거리를 둘 필요가 있는 사람이 많다. 이들에게는 자기긍정의 자존성을 북돋는 게 아니라 타자성을 체험토록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요는 어떤 사람들은 자존성보다는 타자성을 체험해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존성을 체험해야 성숙한 힐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찬호 교수가 보기에 현재는 역으로 자아숭배, 자아도취, 나르시시즘의 시대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힐링과 멘토를 찾으며 외부 힘에 의탁하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느 때보다 강한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권세든 미모든 자신의 어떤 것이든 타인의 시선을 끄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루저’가 되는 시대. “하찮음에 대한 공포. 자기가 시시한 존재로 여겨질 것 같은 두려움이 이 시대를 지배한다.”

 

힐링은 어쩌면 진정제 같은 것이다. 세상과 불화, 하찮고 시시하고 투박한 삶과 대면하는 고통을 잊게 만들고 적당한 수준에서 자기 승인, 세상과 화해를 도와주는 진정제. 하지만 진정제로 평생을 버틸 수는 없다. 김찬호 교수는 “자기를 있는 그대로 승인할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20대들의 학습 모임 ‘만행’ 구성원인 김이경 씨는 “멘토들은 헛된 발언 그만하고 그럴 만한 사회적 위치에 있으니 각자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우리 삶을 더 낫게 바꾸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꼬집기도 했다. 말랑말랑한 몇 마디 말이 아닌 현실을 변화시킬 ‘실질적인 행동’을 촉구한 셈이다. 가령 이렇게.

 

“우리가 정말 듣고 싶은 건 ‘네 탓이 아니다’보다 ‘아이 낳아도 잘 키울 수 있다, 걱정 마’ ‘직장 그만둬도 살아갈 방법은 많다’일지 모른다. 6시간 노동으로도 잘 살 수 있다, 이런 여론을 만든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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