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틀에 갇힌 탈핵 논의

굉장히 논쟁적인 문제이지만 실제 토론에서는 그리 논쟁적이지 못했던 아쉬움에

용기를 내어 이 글도 올려봅니다.

세상에 답은 없지만 여러 관점들을 살피고 균형된 시각을 발전시키는 즐거운 불편함도 필요하니까요.

 

 

탈핵을 주장하는 대부분 환경 운동가들의 논리의 핵심은 핵 발전의 위험성이다. 개인의 성장, 이익과 효율 추구를 위해 인류에게 대재앙을 안겨줄 수 있는 위험한 핵 발전을 고수하는 것은 ‘집단의 조직화된 무책임’이라고 한다. 후쿠시마에서 보았듯이 핵발전 사고가 인류에게 가져오는 막대한 피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탈핵은 의심의 여지없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처럼 들린다.하지만 위험성을 중심으로 펼치는 논리에는 큰 한계가 있다. 위험성을 따진다면 우리 주변에 위험하지 않은 게 없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볼까. 위험성을 따지자면 자동차는 절대 탈 것이 못 된다. 자동차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가 얼마나 막대한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사고로 인해 발생한 사상자 수가 6.25 전쟁 사상자 수를 이미 10년 전 쯤에 훌쩍 넘었을 정도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이 발간한 ‘2004년판 교통사고 통계분석’은 “70년 이래 588만380건의 교통사고로 26만666명이 사망하고751만8964명이 다쳤다.”고 했다. 6.25 전쟁에서 죽은 남한 사상자 수가 약 150만명에서 300만 정도라는 것과 비교할 때 어마어마한 수치다. 우리가 편리하기 때문에 매일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는 자동차는 한국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었던 전쟁을 능가할 정도로 위협적이고 무서운 교통수단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자동차에 대한 ‘안전불감증’을 자각하고 자동차 사용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과연 이 주장은 현실에서 효과가 있을까. 같은 논리로 자동차보다 더 큰 대형 사고를 일으키는 비행기는 더더욱 타지 말아야 하며, 조금 더 불편하더라도 해외에 갈 때는 배를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가.

 

현재 위험성 중심으로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건드려 에너지 전환을 주장하는 탈핵 논리는 실효성이 매우 떨어질 뿐만 아니라 편파적이다. 핵 발전 대신 나무 땔감을 태워 쓰거나 공정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솔라 패널을 사용하는 게 친환경적인 방법일까. 전체 탄소 배출량과 에너지 효율을 따졌을 때 탈핵은 과연 얼마나 지속가능한 대안일까. 또한 사람들은 단지 안전을 위해 핵 발전이 가져다주는 사회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포기하고 살 수 있을까. 자동차를 포기하고 몇 시간동안 걸어 다니고 배를 타고 해외를 다닐 수 있는가 말이다.

 

에너지 위기와 전환은 기존의 탈핵 논리만으로 풀 수 없는 매우 복잡한 문제다. 나는 탈핵을 지지하지만 기존의 탈핵 프레임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을 일시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닌가 회의가 든다. 무엇보다 탈핵 강의를 듣는 것을 거듭할수록 사람들을 너무 나이브하게 상정하고 현실을 너무 단면적으로밖에 논의하지 않는다는 걸 느껴 참으로 답답하다.

 

일본에서 후쿠시마 사건이 터졌는데도 불구하고 탈핵을 주장하는 민주당을 찍지 않았다는 게 이상한 거라 했나. 어떻게 탈핵 하나 가지고 당을 찍지 않았다는 걸 문제시하나. 정말 현실적으로 보면 실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탈핵 말고도 아주 많지 않겠나. 그 중 경제는 먹고 사는 문제니 당연히 최우선순위 중 하나다. 근데 그것을 ‘몰지각성’과 ‘무책임’으로 규정하기엔 세상이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탈핵을 하는 것조차도 에너지와 연관된 모든 섹터들, 정치, 경제, 지리, 문화적인 면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논의라 당위성 수준의 논의로는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어렵다. 아까도 말했지만, 위험성 가지고는 자동차와 비행기도 타는 것도 정신 나간 짓이 된다. 같은 맥락에서 항상 독일의 경우와 핀란드를 우리나라와 비교하는데, 독일과 한국의 사회, 경제, 정치, 지리적 구조는 판이하다. 그런 다양한 요소들을 배제해놓고 독일은 탈핵을 이루었다며 배워야 한다는 식은 스웨덴 복지를 들먹이며 우리도 스웨덴 복지를 배워야 한다는 단순 논리와 비슷하다. 그들의 해결책을 우리나라가 따라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예컨대 핵 시설물의 밀집도 문제를 자꾸 핀란드와 비교하는데, 핀란드는 한국보다 훨씬 넓은 땅덩어리에 서울에 사는 인구보다 적은 인구가 살는 나라다. 그런 나라와 밀집도 문제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오히려 핵발전 시설은 밀집되게 분포가 되어야 위험성이 떨어진다는 논리도 있다. 띄엄띄엄 분포를 해놓을 경우 사방이 위험군에 들어가게 되니 말이다.

 

탈핵은 ‘탈핵’의 프레임으로 풀기 굉장히 힘든 숙제이다. 에너지 발전의 문제는 위험성뿐만 아니라 에너지 효율성의 문제, 국가의 복잡한 사회, 경제, 정치, 지리적 조건을 다뤄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현재 제대로 핵 발전의 찬반 토론을 붙이게 되면 논리성만 가지고도 탈핵의 논리는 찬핵의 논리에 대응할 수가 없다. 찬핵을 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대화 안 되는 우파들만 있는 것처럼 비추는 것도 현실의 왜곡이다.

 

탈핵 얘기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중에 ‘도시가 에너지를 다 쓰면서 지방들이 핵 시설 때문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얘기가 있다. 왜 도시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이렇게 지역 간 에너지 불균형을 이뤄놓았는지를 문제시하는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도시에 사람과 높은 건물들이 집중되어 있어 에너지 효율성이 더 증가한다. 우리가 원전을 멈출 수 없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만큼 에너지 수요량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시골에 단독 주택 짓고 살수록 에너지 소비는 몇 배로 증가하고 자동차 사용률도 높아져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게 된다. <도시의 승리>를 쓴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도시 밖보다) 엘리베이터 중심의 혼잡한 도시에 사는 것이 지구에게는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라는 환경 운동가들의 슬로건만큼 멍청한 슬로건은 별로 없다. 좋은 환경보호 운동에는 범세계적 차원의 시각과 행동이 필요하지, 건설업체들을 몰아내려는 편협한 지역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건물 신축을 막음으로써 한 지역을 더 푸르게 만들려고 애쓰다가 새로운 개발 계획을 환경적으로 훨씬 덜 우호적인 어딘가로 밀어냄으로써 환경을 더 오염시킬 수 있다.“ 고 말한다.

 

<도시의 승리> 에 나오는 논리들을 자세하게 풀진 않겠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논리들도 탁월하고 설득력 있으니 읽어보면 좀 더 균형된 시각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 얘기를 잠깐 꺼낸 궁극적인 이유는 에너지 위기와 전환의 문제를 얘기할 때 ‘탈핵’도 한 논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각하고 좀 더 다양한 논리들을 접해보아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다. 복잡한 현실의 문제를 풀려면 한 쪽 논리만으로는 절대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명확하고 당연하게 결론이 나는 것은 오히려 경계해야 하고 공부를 더 할 필요가 있다. 탈핵을 지지하지만 아직 지금 들리는 탈핵 논의, 프레임을 가지고는 현실에서 설득력과 문제해결력을 갖기엔 너무 미약하다. 탈핵 문제는 오히려 탈핵을 넘어설 때 좀 더 성숙된 논의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5 comments on “제 틀에 갇힌 탈핵 논의”

  1. 리포지셔닝 플래너 응답

    잘 읽었습니다.
    다양한 시각을 만나는 일은 역시 즐겁네요.
    저는 지난 탈핵 강의를 들으면서 탈핵에 대한 막연했던 생각에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요.
    논리나 당위.. 는 모르겠지만, 위험성에 있어서 자동차나 비행기와는 비교도 안되는 것처럼 느껴져요.
    발생 빈도로만 놓고 생각하면 다를 수 있겠지만, 한번 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파급력과 지속력을 생각하면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더 강하게 반대하고 싶어져요.
    그리고 에너지 수요가 많아서 핵발전소를 짓는다고 하고 그게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일단 낭비되는 에너지들을 다 잡고 나서 다시 따져보면 어떨까 싶어요.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때문에 원전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말이죠. 사람의 다양한 욕구들을 최대한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것들이 과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건 더 주관적인 욕구와 생각이지만, 저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80년대 이전이나 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의 방식) 사는 것이 인간에게도 ‘본질적으로는’ 행복을 가져준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인간과 지구 생태계에 행복과 안전과 건강을 가져다주는 것이 탈핵인지, 안전한 핵을 만드는 것인지, 또 다른 방법들인지에 대해서는 활발한 논의가 있어야겠지요.

  2. 응답

    리조님 생각에 깊히 공감합니다. 찬성과 반대의 논리를 가능한 많이, 가능한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반대되는 의견을 깊히 들여다볼 때 이 일이 무엇을 위해 필요하고 진행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테니까요. 그 후 선택을 해야겠지요.
    특히나 아직 배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이래야 한데, 저래야 한데에 자기 판단 없이 휩쓸리기 쉬워서, 생각하는 방법의 연습이 많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어줍잖은 도덕적 우쭐감만 키우게될 수 있어서 더욱…
    개인적으로 비행기, 차 등의 문제와 핵은 그 영향력이 다르기 때문에…. 살아남느냐의 문제일 ‘수’ 있어서 핵에 대해서는 좀 더 보수적 접근이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3. 응답

    참…리조님이 읽으신 ‘도시의 승리’는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4. hiiocks 응답

    어쩐지 “자유로운 대화”라는 게시판은 리조만 글을 쓰고 있는 것 같군요.

    탈핵이야기는 논쟁으로 접근하지 않고
    조금더 자료들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 문제를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는 “윤리적 문제”로 다루었다는 점도 참조해주고요.

  5. tarak 응답

    ‘도시가 소비하는 에너지를 감당하느라 지역은 핵발전소 같은 위험을 떠안아야한다’는 걸 지적할 때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지방에 가서 살자’가 아니라, 형평성의 문제, 도시가 지역을 식민지화하는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닐까요? 거꾸로, 지방에는 발전소와 최소한의 인구만 두고, 모두 도시로 이주해 밀집되어 살면 형평성과 효율성이 생기는 것인가, 그렇게 질문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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