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심리학, 그리고 관계적 주체로 선다는 것

정신분석학자의 설명은 어떨 땐 예리하게 설득력있게 들린다. 

들으면서 고개를 끄떡여질 때가 있다. 오, 저걸 저렇게 설명할 수 있네.

그런데 그걸 듣고 집에 돌아와 가족과 논하려고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직접적으로 자기 자신과 상대방의 개인적인 경험이 얽히고 섥힌 부분이라,
아무리 내가 납득을 했고 나름 객관화하여 하는 얘기라 해도 상대방을 푹푹 건드리게 될 수 있다.
생각해 보니 그건 ‘진단’의 언어이기 때문이었다.
‘공감’의 언어가 아닌 ‘진단’의 언어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방에게 얘기했을 때 
얘기가 잘 되기를 기대한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나는 그걸 엄마한테 맹정현 선생님 강의를 얘기하다가 
서로 한바탕 언성을 높이고 난 뒤에 ‘아 씨. 역시. 잘못했다’ 라며 깨달았다.
 
강의를 듣고 돌아와 이틀 후 엄마랑 밥을 먹으러 갔다가 
식당에 테이블을 둘러싸고 뭔가 자식, 공부 관련 얘기를 하고 있는 ‘학부모’ 5명을 보고
맹정현 선생님 강의 얘기를 꺼냈다.
부모의 나르시시즘적 경쟁이 아이들을 대상화하고 아이들에게 투여된다는 얘기부터 시작하여
‘내가 이걸이걸 포기하면서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희생의 언어로 아이들을 압박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되고 가족에서 주체가 되는 것은 어려워 진다 등….
이상하게 어디서부턴가 엄마도 그렇잖아 식의 내 ‘얘기’가 되면서
또 쳇바퀴처럼 구르고 굴러가는 그 부모-자식 언쟁이 시작되었다. 
 
저번 수요일에 정철 박사님도 그러셨지만,
참 그 ‘가족’에 대해 얘기를 하는 자리에, ‘자식’들은 왔는데 정작 ‘부모’들은 별로 안 온 게 안타깝다.
자식끼리, 자식-부모끼리, 부모끼리 얘기 주고 받고 그랬다면
그 토론은 어떻게 갔을지 궁금하다.
 
내가 엄마와 그 날 말다툼을 하고 나서 느낀 건
아, 자식의 입장에선 맹정현 선생님의 진단이 비교적 어려움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겠구나 한 거였다.
자식은 결국 ‘대상’인 입장이니 말이다. 
부모의 입장에선 또 그렇지 않을 거다.
이것도 각 부모가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신도 복잡하고 힘든 상황에서 나름 많은 갈등을 거쳐서 자기보다 자식에게 먼저 줘야 겠다는
생각으로 준 사랑인데
그걸 자식을 대상으로 리비도를 투자했다고 딱 한 줄로 이론화시켜 얘기를 해버리니, 
어떻게 보면 ‘매도 혹은 ‘모욕’으로 들릴 수 있다. 
 
‘엄마도 이제 엄마 인생 찾아요’ 하는 게 자식 입장에선 자기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나이니
‘엄만 그게 왜 안 되냐’ 하겠지만 
또 부모가 현재 그 나이에, 처한 그 상황에서 듣는 그 얘기는 그리 쉬운 얘기가 아닐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들 심리학’ ‘딸 심리학’을 공부해야 하는 만큼
‘엄마 심리학’ ‘아빠 심리학’도 알아야 한다.
그건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를 이해하는 것이도 하고 
또 부모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 자기 자신이라는 것도 잘 모른채 
어느날 자신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꾸역꾸역 월급을 타왔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언제부터 가족 안에서 말 안 통하는 ‘외계인’이 되어버린 그 심정을 
나는 잘 모른다. 
나는 언젠가부터 아버지가 벌어오는 돈을 너무 당연하게 챙겨갔고,
언젠가부터 아버지를 아, 정말 말이 안 통하는,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래서 언젠가부턴가 나도 아빠를 ‘포기한 채’ 돈 버는 기계로 취급해버린 것 같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결국 부모가 포기하게 만들어 버리는 건 답이 아닌 것 같다.
자식의 입장에선 부모가 포기했으니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주체가 됐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 자식은 ‘관계 안에서’ 주체가 아니라 ‘일방향적인’ 주체가 되어버렸는지 모르니까.
결국 나도 언젠가 낳고 기르게 될 수 있는 ‘아이’에 대해 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나도 언젠가 되어 있을 수 있는 ‘부모’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겠다.
(당연히 여기서 부모 공부는 단지 자식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공부가 아니다.)
 
생각해보니 내가 맺고 있는 가장 오만하고 무지한 관계가 부모와의 관계인 것 같다.
부모의 심리에 대해 알아보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먼저 자식의 심리에 대해 이해하라고,
부모가 자식한테 요구한다는 걸 모르듯, 나도 부모한테 요구한다는 걸 모르는채 요구했었다.
가족에서 자식이 주체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부모로 하여금 포기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자식이 부모한테 그래주길 원하는 거처럼 
자식도 부모 삶의 맥락과 심리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부모 심리를 안다고 착각할 때부터 부모와의 길고 긴 갈등의 역사는 점점 깊어지는 것이다.
결국 가족에서 자식이 진정한 주체로 살아남는 방법은
자기를 먼저 살리려 하기 전에 부모부터 살리려 하는 게 현명할 수 있다.
결국은 자식이 생각한 것과 달리 부모도 가족에서 주체가 아니었을 거고, 
부모도 가족에서 주체로 살아남으려 발버둥쳐온 걸 수 있다.
 
실마리는 각자 자기를 일으키려 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일으키려 할 때 자신도 조금씩 함께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있다.
관계에서 주체는 자기가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6 comments on “부모 심리학, 그리고 관계적 주체로 선다는 것”

  1. 리조 응답

    어젯밤 잠도 못 자고 과제 때문에 끙끙대며 밤을 꼴딱 새고 나니 심신이 너무 피폐해져 있었는데, 글을 쓰면서 신기하게도 몸과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자유롭게 손 가는 대로 써서 짜임은 없지만, 글을 쓰면서 받았던 정화의 기운이 좀 배어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 응답

    강의를 들은 한 부모입니다. 부모도 주체로 살기가 무척 어려워요. 사회적 지위, 돈, 명품, 직장 등에서 주류에 속하는 대상, 1등이 되어야 할 대상으로만 취급받기 때문에 주체로 서 본 경험이 별로 없는 듯 합니다. 그래서 자식에게도 1등 대상이 되라고 하는 거 같아요.

  3. 리조 응답

    네… 그래서 저도 가족에서 자식이 어떻게 주체로 살아남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자식과 부모가 서로를 주체로 살릴 수 있는지 그 고민을 공유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4. 응답

    네에.. 나, 가족, 사회 모두에서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5. 리포지셔닝 플래너 응답

    와.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서 좋네요.
    저는 늘 집에서 부모, 자식, 형, 언니, 동생.. 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 연령과 능력 등이 다른 인간으로 서로를 봐주자고 주장하는데, 부모님은 그건 불가능하다고 하시네요.
    결혼도 아무도 필요없이 혼자 살 수 있겠다 싶을 때 하는게 가장 좋다고 하는데, 그런 맥락에서 가족도 관계와 관계없이 하나의 존중받아야 할 인간으로 생각하면 많은 것이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어요.
    가족 뿐 아니라 학교, 조직, 기타 공동체.. 에서도 마찬가지구요.
    저는 사람을 연령에 상관없이 거의 똑같이 대하는 편인데, 좋더라구요, 예를 들어, 7살 짜리라도 혈연의 동생이나 조카가 아니면 존대하는 식이죠.

  6. 음냐 응답

    리포지셔닝플래너 >>> “저는 사람을 연령에 상관없이 거의 똑같이 대하는 편인데, 좋더라구요, 예를 들어, 7살 짜리라도 혈연의 동생이나 조카가 아니면 존대하는 식이죠.” – 이건 그냥 님 기분이 좋은 거지, 상대방이랑은 별로 관계없는 부분이네요. 상대가 존대를 원할 때 존대를 하는 거랑은 완전히 다른 접근인거죠, 이건.

    리조 >>> 저도 아직 애가 없고, 자식의 위치에 머무르는 사람인데요, 저는 서로의 마음에 대해 논하기 이전에, 상대적으로 훨씬 간결하고 논리만 생각하면 되는 ‘책임’ 의 차원을 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는 낳아달라고 한 적이 없고, 부모가 멋대로 낳은 거니까, 기본적으로 부모가 인간대 인간으로 상대 가능한 행위의 주체라고 상정한다면 부모자식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는거죠. 이 지점을 부모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즉, 자기 자신을 자신의 행위의 주체로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이 부모에게 있다면, 대화는 뚫릴 것이고, 상황은 진행가능한 상태가 되겠죠. 그러나 부모가 이 단순한 얘기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다면 대화가 불가능할거구요. 그런 경우 자식이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한다는 식으로 자식에게 지울 수 있는 의무는 전적으로 제로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훨씬 간결한 차원인거고, 마음을 다루기 시작하려고 하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지죠. 저는 쉬운 차원부터 정리하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신분석적 개념과 관점들을 도입하는건 그 다음 일.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을 통해 상황을 낱낱이 해체해서 어버버 하는 상대에게 “이건 이런 거고, 저건 거런 거야” 라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오히려 이 경우에도 자기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망각으로 말미암아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뿐일 위험성이 높지요. 가령 그 분석이 얼마나 옳건 간에 대화의 맥락속에서 자식이 “이건 이런 거고 저건 저런 거야” 라고 하는 말이 결국 부모에게 화를 내는 것, 어떤 요구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저 요구와 요구가 부딪히는 싸움이 될 뿐이니까요. 정신분석적 관점으로 상황을 이해하는건 정신분석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하는 활동이니, 그걸 들이대며 ‘너도 상황을 나처럼 이해하고 나처럼 받아들여줘’ 라고 요구하는건 실질적으로도 무리고, 소득도 없는 일이 되겠죠. 정신분석을 이해하고 정신분석의 틀로 인간을 바라보게된다는건, 인간의 지워질 수 없는 근원적 고독을 향해 잘 닦아놓은 고속도로를 페라리 타고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 고독을 받아들이고 나면 정신분석적 이론을 통해 이해한 바에 근거해 신경증으로, 또는 여타의 다른 증상(도착증이건 정신증이건)으로 인해 고통받는 인간들을 대상으로 정신분석적 실천을 전개할 수 있겠지요. 정신분석 이론을 공부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하기 전에 어떤 각오를 좀 해 주시는게 좋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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