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후기 – 압축을 푸는 ‘득도’의 세대로

“우리는 압축적 시공간에서 산화되고 있다. 압축을 푸는 일이 필요하다”.

조한혜정 선생님 말씀 중에서 이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우리는 굉장히 압축적인 시공간에서 모든 걸 빨리, 평생에 걸쳐 점차적으로 할 ‘배움’도, ‘성장’도 빨리 ‘처리’하라 강요받으며 살고 있다.

정철 박사님이 “지금 사회를 ‘성과사회’ 라 하는데 여기서 ‘성과’는 ‘속도’다. 양질의 성과 보다는 빠른 성과가 중요하다.” 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산화’된다는 표현이 예리하게 잘 들어 맞는다. 

염산에 담긴 철 조각처럼, 자기 자신이라는 게, 자신을 둘러싼 관계, 사회라는 것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 

 

우리는 모두 흘러가는 물같은 존재다. 역사만 흐르는 게 아니라 사람 한 명, 한명, 인생 하나, 하나가 흘러간다. 

흐르는 물을 가둬놓고 엄청난 압력을 가하면 물 분자의 형태를 잃고 증발되듯이 

우리도 모두 증발되어 사라지기 전에. 압축을 풀어야 한다. 

압축을 푸는 일이 중요함을 넘어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떻게 풀까? 

이 질문을 선생님은 “알면서도 왜 움직이지 못하는가?” 라는 물음으로 이어가셨다.

이유는 시간, 공간, 관계의 틈이 없기 때문에.

 

단지 ‘머리’로만 이해가 가는 대목이 아니다. 

정말 이 세 가지가 모두 갖춰져야 가능하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 

나는 이걸 자전거 공방에서 배웠다.

 

 

자센터에 있는 자전거 공방이 잘 돌아가는 데에는

‘매주’ ‘공방’에 멤버들이 함께 모이는 지속적인 ‘커뮤니티’, ‘심란한 공방’ (‘심공’)이 큰 역할을 한다.

심공은 시간, 공간, 관계의 틈 모두가 상존하는 아주 좋은 예이다.

 

번째, 시간의 틈. 

공방 멤버들은 매주 수요일 공방 정기 모임에 참석한다.

굳이 매주 무슨 할 일이 있어 만나는 건 아니다.

때로는 함께 논의하고 계획할 거리도 있고, 멤버들 서로에게 궁금한 것(겨울철 라이딩 복장, 자전거 정비 등)을 배우는 세션도 있지만,

그런 게 없더라도 나와서 얘기를 나누거나 함께 라이딩을 하고 간다. 

중요한 건 특별한 목적 없이도 꾸준히 나와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방에선 ‘프로그램’을 지’양’한다. 

프로그램이라는 건 주어진 시간 안에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목적을 지니고 참여하는 것이기에 

자신에게 갖는 어떤 ‘효용’이 떨어지면 그 순간으로 끝이 나는 것이다. 

 

현재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이라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만

‘무목적성’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은 일상을 즐겁고 풍요롭게 한다. 

매주 공방 모임이 있는 날이면 내 ‘몸’이 미리 아는 것처럼 여김없이 공방에 발걸음 하게 되는 이유다.

 

번째, 공간의 틈.

‘심공’에는 사람들이 만나 상호작용을 하는 ‘공방’ 이라는 공간이 있다.

자전거 공방이 생긴지 1년이 좀 넘었는데, 1년 전과 지금 공방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간 공방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다. 리싸이클링도 하고, 정비 수업도 하고, 공방 바자회도 하고…

1년 간 기록한 공방 사진들을 보면 그간 공방에서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참 많은 추억이 쌓인 게 보인다.

공방은 실제 물리적으로도 많이 변했다. 

직접 사람들이 공방을 쓰면서 공간을 조금씩 바꿔왔기 때문이다. 

자전거 보관대, 옷장, 헬멧, 바퀴 걸이 등 새로 생긴 것도 있고(공방 지기 비고로가 옆방 목공방에서 직접 만들었다) 장비 걸이나 부품 보관함 등 위치가 바뀐 것도 있다. 

그 변화를 직접 만들거나 봐왔던 사람들에게는 공방 인테리어, 물건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방을 바라보는 멤버들의 감수성은 남다르다.  

공방은 단지 물리적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의미를 지니는 ‘장소’가 된 것이다.

내게도 학교보다 더 많은 추억과 애착, 그리고 성장의 궤적이 깃들어져 있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지금 송도에서 자전거 공방 만드는 걸 준비하고 있는데,

그것도 사실은 하자센터 자전거 공방을 학생, 교수님들이 직접 와서 구경하고, ‘아, 이런 곳이구나’ 감을 얻고 나서 발동이 걸렸다.

장소적 의미를 지닌 공간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스스로 둥지를 짓도록 영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공간이라는 건 단순히 물리적인 ‘빈 곳’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를 맺고 교감하고 상호작용하면서 끝없이 채워지고 커가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공간을 채우고 키우는 의미가 아니라, 나의 애정과 추억으로 채우고 나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내가 애정과 추억으로 채운 공간은 내가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는 ‘장소’가 된다.  

반면 ‘무장소성’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끊임없이 떠돌이가 되어 배회하게 된다.

꾹 옭아매었던 공간에 압축을 풀고 ‘장소성’이 스며들 수 있는 틈을 만들어 가는 게 참으로 중요하다.

 

번째, 관계의 틈

‘심공’은 매주 자전거 공방이라는 시공간에서 맺어지는 돈독한 관계망이다.

자전거를 매개로 이어진 심공 멤버들은 계산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에게 시간과 재능기부를 당당히 요구하면서빚을 짐과 동시에 주고 받는 관계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일례로 심공에는 ‘자출(자전거 출퇴근) 기획단’의 전통이 있다.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하려고 하는 멤버에게 자전거를 빌려주고 

시간을 내어 출퇴근 코스를 모색하고 가장 좋은 코스로 직접 에스코트하며 안내해주는 활동이다.

자출 기획단의 수혜를 받은 주인공은 자출 기획단에게 미안해하거나 고마워서 따로 보답을 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

다음 자출을 시도하려는 친구에게 자출기획단을 꾸려주면서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기부하는 선순환 릴레이를 이어가면 된다. 

나도 ‘리조 자출기획단’의 도움을 바당 작년 9월부터 꾸준히 자출을 하고 있고

올해부터 우리 자전거 공방팀 친구들의 자출을 도와주려 한다. 

 

 리조 자출기획단

              리조 자출기획단 – 리조 자출 첫날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거나 밑을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으면

관계가 숨이 막혀 끊어지기 마련이다. 

타인에게 완벽하게 보이고 대우해주려는 것보다

서로에게 빚질 일을 만들고, 그렇게 해서 또 만나고 갚을 일을 만드는 게 

관계가 깊어질 틈을 내는 일이다. 틈은 많을 수록 관계는 오래 간다.

 

정철 박사님은 “내 노후를 보장해주는 건 연금이 아니다. 공감,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얼마나 되는지가 가장 큰 보험”이라는 말을 하셨다.

연금 재정은 어차피 노인 인구가 계속 증가하면서 조금씩 바닥을 보일 거고 지금 내가 부었던 돈의 반도 못 받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잘 형성하고 유지하는 관계는 돈처럼 언젠가 소멸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평생 나를 먹여 살려 줄 수 있는 자산이다.

심공에서는 서로 빚지고 갚아가는 상호호혜적 관계를 만들며 함께 먹여살리는 기반을 닦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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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공간, 관계의 틈이 있는 ‘심란한 공방’ 모임

 

속가능성을 향해 ‘틈’을 만드는 방법을 나는 운이 좋게도 공방에서 직접 ‘몸’으로 배워 왔다.

내가 자전거 공방 일을 이어가고, 홍보하고, 친구들을 계속 공방에 초대하려 하는 이유는

내가 ‘자전거 매니아’여서가 아니라 

압축이 풀린 시공간, 시간, 공간, 관계의 틈이 있는 한 생태계를 공유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몇 십년을 바라보고 그 생태계를 이어갈 동료와 후배를 찾기 위해서다. 

 

 

축을 푸는 건 ‘오늘부터 시작해야지’ 하는 의지로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압축에 내성을 키울 정도로 적응을 했기 때문에 압축을 푸는 일이 더 어려울지 모른다.

중요한 건 ‘익숙해짐’이다.

강의 후 모임에서도 정철 박사님이 ‘익숙해지는 것’을 많이 강조하셨다.

 

‘합리적 포기’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는 우리 – 조한혜정 선생님은 그런 우리를 ‘초합리적 바보’라 부른다 – 에게는 

합리성의 이름으로 퇴화시켜버린 감각과 근육을 길러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 예로 정철 박사님은 ‘비등가적 교환’ 활동을 언급하며 계절마다 여는 ‘공방 바자회’ 얘기를 해주셨다.

‘공방 바자회’가 열리면 멤버들은 상태는 좋지만 자신이 최근 3개월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을 내놓는다.

그러면 각자 자신이 맘에 드는 물건을 고르고 그 물건이 자신에게 얼만큼 가치가 있는지를 생각하여 가격을 책정한다.

시장 가치가 얼마인지는 상관없다. 자신의 상황과 가치관에 입각하여 자유롭게 매기면 된다.

그렇게 책정한 돈은 공방 지기 미라클에게 입금하면 나중에 간식비, 외부 용접/도장 교육비 등 공방 활동 지원금으로 쓰인다.

 

나도 공방 바자회에 참석하여 자물쇠, 전조등, 헬멧, 버프, 라이딩복 등 필요한 자전거 용품을 거의 다 마련했다.

내가 사용한 가격 책정 방식은 내가 매일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쓰는 식비를 기준으로 했는데,

특정 물건을 사기 위해 한 끼 식비 3000원을 몇 번 아끼면서 버틸 만한 가치가 있느냐로 가격을 매겼다. 

자세한 후기는 아래 링크에서 참고해보시길^^

 

http://www.bike4life.kr/2012/10/05/%EB%A6%AC%EC%A1%B0-%EB%B0%94%EC%9E%90%ED%9A%8C-%ED%9B%84%EA%B8%B0/

 

 

렇게 압축을 푸는 일에 익숙해져 갈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득도’의 세대라 불릴 수 있을 거다.

단지 장기불황에 고실업에 어차피 돈도 별로 못 버니까 소극적으로 산다는 건

타의 반 자의 반 압축을 ‘강화하는 걸 안 하는 것’일뿐, 압축을 ‘푸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알지만 움직이지 못한다면 득도보다는 교착(deadlock) 상태에 가깝다.

 

‘득도’의 세대, ‘득도’를 한 건지, ‘냉소적 나르시시즘’의 행태를 보이는 건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자신의 욕망과 자기보다 자기 욕망을 더 잘 알고 이용하는 시장의 논리를 잘 알고 있는지,

시장 논리에 묶인 삶과 생각에 끊임없이 질문하며, 

시공간, 관계의 틈을 만드는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고 익숙해지고 있는지,

‘Republic 혹은 Empire of Technology’의 Subject 대상, 노예에서 벗어나 ‘Republic 혹은 Ecosystem of Peoples’ 의 주체로서 준비하고 있는지…

 

‘득도’의 세대가 될 건지, ‘교착’과 ‘멘붕’의 세대가 될 건지는 우리의 몫에 달려있다.

1 comment on “1강 후기 – 압축을 푸는 ‘득도’의 세대로”

  1. 이서 응답

    좋은 글 잘 읽었어요~ :)

    자전거 공방의 경험이 씨줄날줄 짜듯 잘 보여서
    새로운 길과 틈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안내서처럼 읽힙니다 ㅎㅎ

    자전거 공방에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이 글 기쁘겠어요.
    심란한 공방 앞으로도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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