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게서 발견한 무연사회의 일면

아, 무연사회를 주제로 글 쓸거리를 생각하다
불현듯 저번학기에 수업을 같이 들었던 친구 한 명이 생각났다.
수업밖에서 밥을 같이 먹거나 얘기를 나눌 정도로
사이가 가깝지는 않았으나
지나가며 밝게 인사를 몇 번 나눴던 친구라 기억하고 있었고.
요새 보기 드문, 에너지가 좀 있어보이는 친구였는데 어떤 사정 때문인지 수업 중간부터 나오지 못했었다.

이번학기에 다시 학교에 나오는 것을 보고 인사를 나눴었고
네사문 수업에도 신청을 했던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업에 나오지 않자, 영롱 조교님이 한번 연락해보라 해서 연락해보겠다 했는데.
이런.
결국 그 친구를 챙기지 못하고.
수업 팀프로젝트 준비와 진행때문에 바빠지기 시작하고
또 팀프로젝트에 온 에너지를 쏟듯 몰입하다보니 그 친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
이런.
이건가.
예상하지 못할 때.
당사자이든 관계자이든 목격자이든. 마주칠 수 있는 무연사회의 모습이.

물론 우려와 달리 그 친구는 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나와 내 가족, 아주 친한 친구 한두 명, 그러니까 나의 관계망 속의 아주 이너 써클인 사람 외에는
(지금 함께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자주 연락하는 사람들은 이 논의에선 제외하자.)
돌볼 이웃도, 동료도 없다는 것.
제대로 말해서는 어느 이웃도, 동료도 돌보지 못한다는 것. 안부라도 물어볼 여력이 없다는 것.
나 자신의 모습을 어떤 변명도 토달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즉시하면서
발견한 무연사회 속의 내 모습이다.

이 쪽글을 계기로 어떻게 생각이 나
바로 문자를 넣어 연락을 했다는 게 다행일지 몰라도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 그냥 무심하게 스쳐갔을지 모를 인연이다.

———

지식채널e에서 보았듯이
가족도. 이웃도. 유품처리 청소부만도 못하게 되는 사회의 모습이
지금 내가 사는 곳에도 스믈스믈 엄습하고 있다.

어떻게. 대학에서도 대학’사회’의 모습을 점점 찾기 어렵고
이리저리 수업을, 동아리를, 팀프로젝트, 봉사, 스펙활동을
바쁘게 배회하는 개인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어떻게. 가장 여유 많고. 풍성해야 할.
다양한 사람들과 진정한 ‘연’을 맺으며 살아가야할 시기에. 공간에.

안 그래도 그래서 선생님이 이렇게 빡세게 함께 일하면서
끼리끼리라도 친해져서 잘 지내라고 이런 수업을 열어주시긴 하지만.
그마저도 다른 빡센 프로젝트 수업과 다를바 없게 되버리는,
경험이 다른 수업에 비해 좀 특별했거나 재밌었다는 게.
몇 명이랑 좀 ‘친해졌다’는 게 남는. 그런 수업이 되는 게…
물론. 지금은 그런 수업이라도 되는 게 다행이겠지만 말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정말 맘이 맞는 친구, 앞으로도 같이 계속 갈 친구 한 두명 만나는
아주 운이 좋은 친구도 있겠고…
하지만 시대에, 사회적 흐름에 따라 학생들도 변하니
‘우정과 환대의 교실’은 점점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고.

그럴 수록 힘을 빼지 않고 실험을 계속하려면
기대를 버리고, 거둬드린 작은 성과에, 실패에, 성공에, 경험에 감사하고
하나라도 더 배우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거다.
그럴 수록 연을, 일을 꾸려가는 입장의 사람에서는
‘바람 맞는 것’에, ‘끌어 안는 것’에 익숙해지고.
(“바람맞기에 상처받기 않기, 발가락만 걸치고도 지속하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혹시라도 외롭고 의기소침해질 때면 다른 이와 별 다를 바 없을 자신의 작은 그릇에 겸손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관계가 중요하다. 나를 받쳐주길 기대하는 게 아니라, 나도 누군가를 받쳐주는 것” – 자공공 6강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공공의 가치를 지켜갈 자신의 그릇을 묵묵히. 더 단단히 굳혀야 해야 할 거다.

———-

아. 방금 그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다행이다.
사정이 생겨 수업은 철회하고 그 시간에 알바하면서 지낸단다.
다음학기부턴 다시 연을 맺으며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단다.
수업은 재밌겠었다며, 자신이 생각났다니 감동이란다ㅋ
언제 함께 토킹한번 해보고 싶었다며
학기 끝나고 시간될 때 연락달란다.

꼭. 연락줘야 겠다.

———-

오랜만에 다시 힘이 좀 빠지고. 조금 의기소침해지고.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 같은.
내 모습을 발견하고.
그리고 그 모습을 살포시 어루만져준 첫 눈에게 감사하며.
잠시 집안일과 과제 생각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게 해준.
잊고 있었던 그 친구를 기억하게 도와준 까페. 그리고 까페라테 한 잔에 감사하며.
롯데 공화국 잠실에서 살고 있기에 프랜차이즈 까페밖에 찾지 못하는 현실은.
그 까페에서 흘러나오는 가요가 무척이나 시끄럽다는 현실은. 무척이나 안타깝지만.
그래도 오늘은 첫 눈이 모든 걸 덮어준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펑펑 내리는 첫눈이 어찌 그리 이쁘던지.

1 comment on “나 자신에게서 발견한 무연사회의 일면”

  1. 이서 응답

    저도 ‘잘 바람 맞기’가 중요하다는 박영숙 관장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바람 맞고도 상처 많이 받지 않기’
    ‘발가락만 걸치고도 지속해나갈 수 있는 너그러움과 느슨함’
    ‘그 사람이 자기 동기를 가질 때까지 같이 북돋우면서 기다리는 것’
    밑줄치고 오래 기억해두고 싶은 말들이 참 많았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게시판에서 보니 새삼 반갑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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