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4강] 가족의 탄생

조한 혜정 교수님, 네트워크 사회의 문화기획 수업에서 작성했던 쪽글입니다. 3강 ‘공간’관련 강의와 4강의 여성임대주택과 관련하여 올려봅니다.

 


가족의 탄생

 

법학과 4학년, 서민영

 

  작년 초여름, 언니네트워크와 가족구성원모임에서 주최한 ‘정상가족 관람불가전(傳)’ 전시회를 다녀왔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비혼 여성, 성소수자 커플, 미혼모, 장애여성 가족 등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이 짤막한 글과 함께 전시되었다. 마침 전시회를 찾았던 날에 개회행사가 진행되었고 사진 속 주인공이었던 여성이 축하발언을 시작했다. 차분하게 운을 뗀 여성은 어느 순간부터 울컥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솟구치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를 바라보며 ‘가족’이란 무엇인지 괜스레 멍해지고 말았다. 고등학교 삼학년 때, 여자 사회 선생님의 뼈있는 농담을 아직도 기억한다.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여자 인생은 끝이다.” 당시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던 것은 그녀가 결혼을 하지 않는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 이른바 노처녀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의 어머니나 이모들 역시 경제적 능력만 된다면 결혼 할 필요가 없다고 한결 같이 입을 모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딱지붙이기와 편견을 바라본다. 난감여성모임에서 어떤 미혼 참석자가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받는다는 호소를 기억한다. 어떤 소설가는 여자는 어머니가 될 때 어른이 된다고 말하며 또 다른 작가는 시집살이를 통해 여성이 조직문화에 적응을 한다고 말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의 어머니는 결혼할 필요가 없다 하면서도 내가 어머니가 될 때에만 강해질 수 있다는 모순된 말을 던진다. 과연 여성은 결혼이라는 공식적인 제도를 통해 모성을 갖춰야만 완성된 존재가 되는 것일까. 내가 관찰한 기혼여성, 특히 전업주부의 삶은 자신의 몸을 없애 가족의 거름이 되는 과정이었다. 결혼제도 속 여성의 난감함을 생각할 때면, ‘비혼’이 여성에게 부여하는 주체성과 자유를 막연하게 음미하곤 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들은 현실 속 실험가능성을 배제한 상상 속 추측일 뿐이었다.

 

  그래서 <공간을 통한 사회 큐레이팅> 수업은 ‘가치를 재현한 공간’의 가능성에 대하여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기존에 인식했던 ‘공간’은 이미 주어진 물리적 장소를 점유하는 수동적인 의미였다. 이 때, 세 선생님이 들려준 메시지의 본질은 오히려 단순 명료했기 때문에 낯설었는지 모른다. “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손’의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가슴’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소망하는 가치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실험행위가 필요하다. 결국 한 걸음 나아간 실천 자체가 모험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결국 필요한건 용기다. 박길종 선생님 길종상가라는 공간을 창조하며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처럼. 그리고 안상수 선생님이 30년 동안의 교직을 정리하고 파티학교로 궤도변경을 했던 것처럼…….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가치가 실현된 공간을 재현하고 싶은 것일까. 먼저, 안상수 선생님이 말했던 것처럼 ‘체지’가 가능한 공간을 창조했으면 좋겠다. 큰 목적을 공유하는 친구들끼리 좋은 책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는 공간이 그것이다. 공부하며 얻게 된 뜻이 노동으로 실현되고, 노동에서 얻게 된 경험이 더 큰 뜻을 추구하게 만드는 삶. 그리고 이러한 공부의 범주에는 활자를 통한 배움이 아니더라도 적정기술들을 배우는 삶의 지식 또한 빠질 수 없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내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듯, 배움으로 자신을 닦는 노력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밑불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안상수 선생님의 파티나 길종상가의 직업학교는 교육과 삶의 상호연관성이 실현된 공간의 예를 잘 보여준다.

 

  조한 교수님은 강의 중간에 남을 돕는 게 자신을 가장 성숙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박길종 선생님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그것의 예외가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라고도 말했다. 공동체의 원리, 호혜의 정신으로 ‘함께’라는 큰 뜻이 통하는 공간은 다시 재현될 수 있을까. 살펴보면 공동체가 사라진 이면에는 돈이면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게 된 사회구조가 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삶의 이치인데도 공동체로부터 얻어야 할 도움이 돈으로 구입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문풍지를 바르기’처럼 돈이 되지 않는 사소한 일에 문제가 생기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심부름센터도 존재 한다지만 흉흉한 사회를 생각하면 인간적인 신뢰는 돈을 주고 살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으로 재현할 공간이 어떤 모습이든 그곳이 물리적 장벽이 제거된 곳이기를 바란다. 그 공간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라면 혹여나 마음의 벽이 남겨질까 두렵다. 실은 땅콩집 사례를 보면서 은근한 걱정이 생겼다. 아이들의 경우 계단이 좋은 책상이요, 의자이지만 휠체어의 경우에는 2층이나 3층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훗날 계단이 있는 땅콩집으로 입주하더라도 휠체어를 탄 동료 선생님, 야학 학생들은 집을 구경할 수가 없다. 부디 건축학적 응용을 통해 계단 없는 땅콩집도 가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간을 창조할 때에는 지체장애인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사소한 예로 계단의 난간이나 전등 스위치, 문 등에 간단한 점자 스티커를 붙인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난 학기 등록금을 모을 겸 휴학을 하고 시각장애를 가진 아동의 활동보조인을 했었다. 언젠가는 이용자와 함께 연세대를 방문했었는데, 학관 앞 점자 안내문이나 계단에 설치된 점자가 오류투성이였다. 박물관을 함께 갔을 때에도 점자서비스가 전혀 제공되어 있지 않아 굉장히 당황스러던 경험이 있다. 이용자가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만지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던 전시물들을 실컷 만지며 박물관을 구경했다. 실제로 활동보조인을 하면서 공간의 불편함과 부당함에 화가 날 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소수자를 탈락시킨 채 이루어지는 공간에 대한 사고는 이미 그 자체로 거대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

 

  앞서 언급한 공간적 가치를 기반을 두어 상상해 보는 것은 비혼 여성의 주거공동체다. 비혼 여성공동체는 이미 전주, 가깝게는 서울 신길동에도 있다. 비혼을 결심하든, 결혼제도를 선택하든 혼인 연령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여성의 독립은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가족으로부터 물질적, 심리적 독립을 해야 하지만 막상 독립을 선택할 경우 안전이나 고독, 삶의 기술과 같은 다양한 문제들이 녹녹치 않다. 이 때, ‘괜찮은 세상을 만들자’라는 뜻으로 함께 모인 여성들이 생각을 나누고 삶을 헤쳐 나갈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공부하며 얻은 ‘체지’를 각자의 삶에서 노동으로 승화시킨다. 이와 같은 가치가 성숙되면 이들이 모인 곳이 지역사회의 또 다른 허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역사회의 허브가 된다는 의미는 그곳을 중심으로 여성들 간의 호혜 네트워크가 직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여성주거공동체가 생기면 함께 텃밭을 가꾸고 뜨개질이나 요리 등 다양한 삶의 기술들을 나눌 수 있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자립과 공생의 지혜가 배양되면 이제 막 독립을 시작하려는 20대 초중반의 여성들에게 그것을 전수할 수 있다. 그리고 난감 모임 들었던 직장여성의 고충을 기억한다. 그녀는 아직 회사에 있는데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를 데려갈 시간이 되면 안절부절 해진다고 말했다. 직장 여성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면 주거공동체 구성원 중 가능한 사람이 아이를 대신 데리러 가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답례로 밑반찬을 나누어 먹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 될 것이다. 만약에 신길동 여성공동체처럼 분식집이나 카페가 생긴다면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이 함께 노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해 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듯, 모든 것에 장점만 존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지고 볶아도 자식을 키우기 위해 함께 살게 되었다는 성미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오른다. ‘같이’의 ‘가치’를 공간으로 재현하는 일을 막연히 기대해 봐도 여전히 두려움이 생긴다. 함께하는 것의 풍요로움을 알게 된다면 지금의 두려움에서 한발 내디뎌도 괜찮다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러기에 나는 여전히 사람과의 사귐이 서툴고 ‘같이’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산 속에서 공동체를 일구며 살아가는 박기호 신부님의 이야기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신부님은 사물을 고쳐 쓰듯 공동체에서 유별나 보이는 사람도 고쳐 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러분. 내 성질이 못되어 먹어서 지금 이 모양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디서부터 이 모양이 되었는지, 어떤 이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반영되어 그렇다고 하고, 어떤 이는 가정교육이 문제였다 하고 또 어떤 책에서는 생활환경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어쨌건 저는 이제부터 공동체로 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수행을 하겠습니다. 공동생활 3년 후에, 5년 후에는 마을의 원로처럼 좋은 품성의 공동체인이 되고자 성장할 것입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여러분이 퇴비를 주고 도와주십시오!”출처 : http://well.hani.co.kr/123325

 

  그래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제 모서리를 다듬어 가는 끊임없는 수행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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