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공간을 통한 사회 큐레이팅” 기록입니다.

지난주 3강 <공간을 통한 사회 큐레이팅>이 열렸습니다.

 

최근 파주 출판단지에 타이포그라피 학교를 준비하고 계신 안상수 선생님과

‘살아오면서 배우고 느끼고 겪어온 모든 것들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모토로 운영 중인
길종상가의 관리인 박길종 님이 오셔서 이야기를 열어주셨어요.

 

교육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며, 대안적인 대학/대학원 교육과정을 구상하고,
파주 출판단지를 캠퍼스로 삼아, 그 안에 있는 출판사, 인쇄소, 게스트하우스,
갤러리, 구내식당, 카페, 활판공방 등을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연결해냈다는
안상수 선생님의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고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졸업한 뒤,
미술작가가 되어야 할지, 작가가 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할지 질문해보다가 우연히 2010년 겨울, 온라인에 길종상가를 열었다는
박길종님의 이야기 중에선 무엇보다 인력사무소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알고보면 아주 간단한 생활기술이나 자립기술이 없어 큰 돈을 들여 일을 해결하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식사나 물건을 대접받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기도 하는 것인데요.
동네 ‘홍반장’이나 ‘맥가이버’로 불리기도 한다는 길종님과, 길종상가라는 가상공간을 통해
도시 안에서 보이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연결망이 생겨나는 것 같아 흥미로웠습니다.

 

이태원에 거주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모여 만든 ‘이태원 주민학교’ 팀은 사정상 참여하지 못하셨고요.
서울시 마을공동체위원회, 녹색시민위원회 활동을 하고 계신 이강오 님이 토론을 이어주셨습니다.

 

주제가 ‘공간을 통한 사회 큐레이팅’이었던만큼,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공간에, 작게든 크게든, 새로운 자리를 펼치고, 사람들을 모아서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을 해나가는 큐레이터로서, 위 세 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강의기록에서 만나보세요 : )

 


** 1부 **

 

조한 : 자공공 아카데미 첫 주에는 관과 민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지난주에는 땅콩집 이야기하면서 마을살이와 작업장 이야기를 했어요. 오늘은 디자인 분야에 계신 분들이 오셨습니다. 신선한 일을 결단하고 해오신 분들이 가볍게 이야기하실 것입니다. 이 자리는 가볍게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안상수 선생님이 ‘파티’라는 학교 이야기를 하실 것이고, 박길종 선생님이 길종상가 이야기를, 이강오 선생님이 말을 받아서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실 것입니다. 한 십오 분 씩 말씀 부탁드립니다.

 

1. 말문트기 – 안상수

 

안상수 :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지금 ‘파티’라는 학교를 꾸리고 있습니다. 파티는 ‘파주 타이포그라피 학교(Paju Typography Institute)’를 줄여서 말한 것입니다. 오늘 막 파주 시장을 만나 뵙고 왔는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파티를 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할게요. 저는 대학에서 20년 이상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해, 입시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어정쩡했습니다. 제가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에 비판하기도 어렵고 현실과 제 생각이 어긋날 때 난감하더군요. 어떤 때는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그게 쌓여서 임계점이 넘었을 때 결심을 했어요. 사실 생각을 막 하다가 그걸 하겠다고 몸을 던지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결심을 한 계기는 우연히 왔습니다. 하자 목공방장인 활이 홍대 앞에서 카레집을 하고 있었는데, 가끔 그림을 그려서 팔더군요. 활은, 돈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분이라서, 쌀을 가지고 오면 그림과 바꾸고 했습니다. 그때 그 집의 단골이 되어 거기서 놀았습니다. 활이 그린 그림 중에 ‘생각하지 말고 해버려’ 라고 써 있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지금 지금 제 방에 걸어두었습니다 ‘그만 생각하고 해버려’ 예쁜 글씨로 써 있고 고양이가 있는 그림입니다. 그래, 생각 그만 하고 해버려야지, 생각했어요.

 

올해 제가 육십이거든요. 그런 절박함이 다가왔어요. 이거 해버리지 않고 그냥 정년퇴임을 하면 죽을 때 후회할 거 같았어요. 작년에 용기백배해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가족에게 말하는 것이 가장 힘들게 느껴졌어요. 말 나오기까지가 쉽지가 않았어요. 퉁명스럽게 ‘자기가 한다 그래서 안 한 적 있어?’ 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 말이 허락인 거지요. 무척 고마웠어요. (웃음) 두 번째 힘든 것은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앞에서 말하는 거였어요. 용기를 내어, 제가 지도하는 학생들 세미나 ‘가가학습’에서 말했어요.

 

그리고 과 교수들에게 앞으로 일 년 후에 그만두겠다고 정식으로 말했어요.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이십년이라는 시간이 간단치 않잖아요. 정도 들을 만큼 들었죠. 그때부터 떠나갈 준비를 했지요. 그 일 년이 편안하지 않고 웃음도 잘 안 나왔어요. 이제 마지막 순간에 제일 높은 분에게 말할 때 ‘정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냥 편히 하시라’고 해서 한 학기는 휴직하는 걸로 타협하고 갔어요. 휴직하고 보니 그래도 역시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난 8월말에 정식으로 행정처리가 되었어요. 결국 흡족한 퇴임식을 했어요. 저의 학생들이, 기억에 남는, 단촐하면서도 멋진 퇴임식을 열어주었지요. 이제 떳떳한 입장이 되어서 홀가분한 기분으로, 이제 누구에게도 ‘나, 학교 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조한 선생님도 도와주시고 전군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지난 일요일 여기 하자센터에서 파티 입학설명회를 했어요. 생각한 것보다 사람들이 훨씬 많이 와서 놀랐어요. 그렇게 떨리는 것이 오랜만이었어요. 오늘은 파주시장을 만났는데 용기를 주셔서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키를 잡았어요. 11월 말에 조합법이 발효되면 파주시와 함께 하는 협동조합 학교가 태어나요.

 

파티는 마치 서당같은, 작은 현대식 디자인 도제 학교예요. 또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지는 학교이지요. 대학과 대학원 과정이 있어요. 대학은 ‘한배곳’. 대학원은 ‘더배곳’이라고 지었어요. 주시경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학교 이름을 ‘한글배곳’이라고 지었거든요. ‘배우는 곳’이어서 ‘배곳’이라는 말을 따고, 대학교가 크게 넓게 배운다는 뜻이라기에 한배곳이라고 했어요. 원래 대학원 과정은 ‘높배곳’이라고 할까 했는데, 파티의 교가 아닌 교가 작곡하신 선생님이 ‘높배곳이 아니라 더배곳입니다’ 이라고 하셔서 마지막 순간에 ‘더배곳’이 되었습니다. 학생은 ‘배우미’라 부릅니다. 배우미와 스승이 함께 배워가고 지어가는 학교를 만들려 합니다. ‘우리가 지어가는 배곳’ 이런 과목을 만들어서 그 과목은 제가 직접 맡을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학교를 지어가는 것이 정말 재미있는 디자인이라고 느꼈습니다. 다들 학교 이야기만 하면 너무 즐거워해요.

 

‘0에서 0으로 가는 학교’ ‘재산을 갖지 않는 학교’ 특히 부동산은 갖지 않는 학교가 될 것입니다. 집을 짓거나 땅을 사거나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기물은 쓰던 것을 얻어오거나 고치거나 직접 만들 거예요. 입학하자마자 첫 수업이 ‘내가 만드는 책상 걸상‘이 될 것입니다.

 

 

* 더 읽어보려면 첨부된 PDF파일(20121114 자공공아카데미 3강 기록)을 다운받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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